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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흔들리는 빛, 춤추는 기억

2008-01-15

작가 권두현의 사진은 명확하지 않다. 풍경이든 인물이든 ‘어디/누구와 닮았다’는 찰나의 인상만을 줄 뿐 관람자의 생각을 한 지점에 고정시키기가 어렵게 한다. 카메라라는 기계의 힘을 빌려 객관적으로 펼쳐진 풍경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수만 갈래로 나뉘어지는 아이러니함이 있다.
권두현은 1969년생으로 중앙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와 동 대학원 공예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회화작업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하였다. 서울과 뉴욕에서 10여 차례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통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쳐보이고 있다.


권두현의 이미지는 ‘흔들린’ 이미지이다. 작가는 흔들리는 빛의 잔상과 떨리는 기억의 결합으로 보는 이에게 울림과 여운을 주고자 한다. 뚜렷한 이미지는 사람들의 사고를 제한한다. 의도적으로 흔든 춤을 추는 듯한 이미지는 인간의 기억의 형태와도 매우 유사하며 이때 사진은 기억을 발굴하고 재생하는 매개체이다. 이어 그 흔들림 가운데 어렴풋이 공간과 사물이 인지되면서 사람들은 상상을 통해 기시감(旣視感)을 느끼고 자신의 경험과 연관된 사건을 떠올리면서 새로운 해석을 더해 간다. 작가는 또한 이미지를 미완으로 처리하여 실체가 없는 부재를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명료하게 이해가 불가한 이미지는 관객의 시각을 교란하고 끊임없이 분열한다. 우리 일상에 존재하던 조화로운 사물의 형상은 사라지고 이질적으로 변해가다 점차 환각적인 차원으로 옮겨간다.


인화지가 아닌 순면 종이 위에 프린트를 하거나, 유화로 그림을 그린 후 이를 다시 촬영하는 권두현의 사진은 모호한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장르 사이의 경계에서 모호하게 떨고 있다. 카메라를 흔들거나 움직이는 피사체를 장시간 포착하는 등, 시간과 빛의 상관관계, 카메라의 기계적 특성을 활용해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순면 종이에 프린트한다.
사진은 원래 삼차원의 세계를 평면에 담은 측면이 없는 매체이지만, 권두현은 프린트한 이미지를 캔버스 틀에 부착하고, 그 프린트된 이미지에 붓을 이용해 직접 색을 칠하거나 캔버스 틀 옆면에 색을 첨가했다. 캔버스의 측면도 회화의 영역이 되어 이른바 5면 회화가 되었다. 그로 인해 사진은 단 하나만 존재하는 모노프린트의 운명이 되었고, 사진 자체의 특성을 희석시킴으로써 사진과 부조, 사진과 회화 사이의 모호하게 위치하고 있다.
자유 연상의 세계에서 심상과 상념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환상과도 같은 기억의 부유(Illusion)를 유도하는 권두현의 작품은 회상의 촉매제로서 효과적인(Practical)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관람자의 내밀한 기억 한편을 건드린다.


작가의 말
‘찰칵’ 소리 한번 들려오면 눈에 보이는 이미지 하나가 손 안의 카메라에 담긴다. 붓질 한번, 종이 한 장 없이 말이다. 여기에는 카메라로 찍는 동작(action)과 프린트하는 작업(work) 과정이 있다. 그후 모니터와 인화지 위로 결과물이 나타난다. 디지털 시대의 사진 인화 과정은 다양한 프린터의 결과물이고, 이것은 필름사진의 인화과정을 대신한다


연출한 이미테이션 이미지가 홍수를 이루는 현대에, 난 아직도 현실의 생활에서 얻은 장면에서 더 큰 감동을 받는다. 인위적이거나 연출된 사진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말이다. 그러나 사실 그 자체의 형상만을 담는 것이 목적이 아닌 그 때의 느낌과 감동을 표현하고 싶다. 늦은 저녁, TROCADERO에서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의 점등 장면을 보는 순간, 마치 하늘의 별들이 쏟아져 에펠탑을 장식하는 듯한 모습과 그때의 감동은 또 한 번의 ‘찰칵’ 소리와 함께 카메라에 담겼다. 그 작품이 ‘#02670’ 이다.


사각의 공간 속에 들어 있는 또 하나의 삶의 모습, 그 모습은 내 것일 수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것일 수도 있다. 내 사진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느냐보다 그 속에 어떤 삶의 순간이 어떤 느낌으로 담겨 있는지 보아주기를, 찾아주기를, 느껴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번 전시작품들은 지난 7년간 내 삶이 걸어온 길에서 마주했던 보석 같은 순간들이다. 그 순간들이 내 카메라에 남아 흔적을 남겨준 것에 감사한다.

자료제공_갤러리현대 02-2287-3563 www.galleryhyundai.com


권두현-Practical Illusion 전
일정_2008년 1월 3일 ~ 1월 17일
장소_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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