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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靑 春 戀 歌

2009-08-11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청년들, 어쩌면 역사상 가장 우울한 청춘으로 기록될 당대의 ‘젊은 그대’들에게, 지금 당신의 헤드폰 사이에서 흐르고 있는 음악을 물었다. 스스로의 현재를 대변하는 노래 가사 속에, 아직 저물지 않은 우리의 청춘이 반짝이고 있다.

에디터 | 이상현(shlee@jungle.co.kr), 사진 | 스튜디오 salt,
헤드폰 협찬 | 헤드폰샵 www.headphoneshop.co.kr


친구야 너는 아니
에디터의 메일함은 연일 이런저런 보도자료로 넘쳐난다. 그 중 전시 홍보 메일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자기 알리기에 더 적극적이어야 할 젊은 작가들의 전시 홍보 메일은 의외로 많지 않다. 아니 손에 꼽힌다. 드물게도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 한지은은 7월 한달 간 카페 ‘tora-b’에서 열린 개인전 초대와 관련해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그림은 홍대 앞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화풍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미성숙을 특별한 개성으로 착각하고 마치 옹알이하듯 그림을 그리는 지겨운 부류는 아니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적어도 ‘분명’할 것 같은…. 촬영 당일, 서울이 떠내려갈 듯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제 몸짓만한 그림을 비닐로 감싸 든 채 홀짝 젖어 나타난 그녀를 본 순간, 일단 안쓰러웠다. 안쓰럽다는 생각은, 그리 녹록하지 않은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삶을 자신하느냐,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 준비하는 게 있냐 따위의 염려 섞인 질문으로만 일관되게 이어지고 말았다. “멀리 생각해요. 한 두 해 그릴 거 아니니까, 오래오래 그림이 그리고 싶으니까.” 같은 질문과 대답이 반복될 뿐이다.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줄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선생님이 한지은에게 들려주셨다는 부활의 ‘친구야 너는 아니’는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는 주문과도 같은 노래다. 그런 그녀에게 더 무엇을 물을 수 있을까. 촬영이 끝나고 그녀를 배웅하는 길, 비를 뚫고 가는 한지은을 바라보며 다만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를 부른다.
한지은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

부활의 ‘친구야 너는 아니’가 흘러나오는 헤드폰은 mix-style 제품으로 가격은 55,000원


언젠가는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가수 이상은이 이 아름다운 가사를 지어냈을 때의 나이가 고작 스물 몇 살이었다고 한다. 다소 천재적이거나 결국 애늙은이라는 이야기. 그래서, 청춘은 지난 후에야 깨닫는 거라는 말일까. 공연 홍보 일을 하는 김남우에게 ‘언젠가는’은 후일담이 아니라 바로 ‘지금’을 위한 노래다. “우린 결국 언젠가 죽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잊은 채 살아요. 지나고 나서 제 인생을 뒤돌아봤을 때 다만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을 열심히 살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그는 인생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주춤하거나 겁내는 법이 없다. 훌쩍 떠났던 유럽 여행의 단상을 엮어낸 그의 원고가 뭇 출판사 담당자들의 메일함으로 직구로 날아가 결국 ‘스트라이크’를 외치기까지의 과정이, 김남우가 청춘으로 사는 태도를 말해준다. ‘꿈은 이루어진다’ 같은 입에 발린 표현은 삼가련다. 되려 인생은 상처로 가르침을 주는 반면교사일지도 모르기 때문. 지금 이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라는 가혹한 사실을, 그는 스무 살에 여읜 아버지를 통해 절절히 절감했던 것이다. ‘그걸 아는 사람’이기에 그는 밥 그릇이 크든 작든, 수북이 담겼든 반만 남았든, 제 숟가락을 들고 밥알 한 톨 남김 없이 싹싹 비워 먹듯 산다. 그리고 우렁찬 목소리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답례한다.
김남우 (『사람처럼 사랑도 늙을까요?』저자)

이상은의 ‘언제가는’이 흘러나오는 헤드폰은 AKG 제품으로 가격은 380,000원


너의 의미
그래픽디자이너 조동혁은 몇 일 후면 네팔과 인도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좋겠다, 부럽다고 말했더니 마냥 설레지만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청년 실업이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돌연 사표를 내고 훌훌 여행을 떠나는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을 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다시 디자인을 할지 안 할 지도 모르겠어요. 헤어 디자이너도 재미있을 것 같고. 무언가 만드는 과정에 있는 일이라면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소설가 전경린은 스물 다섯 살의 여자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 ‘결혼하는 여자’와 ‘여행하는 여자’로 나뉜다고 말했다. 삶의 고비 고비마다 ‘존재 증명’을 묻는 부류들, 스물 일곱 살의 ‘청년’ 조동혁도 그러니까 후자에 속하는 셈이다. “여행을 떠남으로써 어떻게 할 수 없는 스물 다섯 살의 시간을 잘게 찧어 부도 처리된 어음처럼 관대하게 내 머리 위로 날려 버리고 싶”(전경린,『유리로 만든 배』중에서)은 마음일까. “여행을 다녀 오면 그 에너지로 일년은 족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몇 년 동안 직장에 묶여 떠나지 못했으니까 제 삶이 어떻겠어요.” 여행이 먹고 사는 일만큼 절실한 생존 조건이라는 말. 제 직업에 대한 회의가 찾아오는 순간을 경험하지 않은 이가 누가 있을까 만은, 결단은 누구나 갖기 어려운 용기다. 안정된 직장, 몇 cc이상의 자동차, 청약저축보다 중요한 다른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 무엇보다 삶에 질문하고 대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용기 말이다.
조동혁 (그래픽 디자이너)

산울림의 ‘너의 의미’가 흘러나오는 헤드폰은 Panasonic 제품으로 가격은 59,000원


Welcome To The Black Parade
명함이나 핸드폰 연결음과 같은 사소한 부분에서도 우리는 타인의 취향을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새빨간 배경에 삐죽삐죽 펑크 머리를 한 남자가 등장하는 네모난 명함, 정통 록 음악이 달팽이관까지 시끄럽게 파고드는 핸드폰 연결음은 디자이너 이승욱이 어떤 부류인지를 말해주는 물증인 셈이다. 점잖은 차림으로 나타나 느릿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어도, 그 새빨간 청춘이 숨겨질 리 만무하다. ‘가요톱텐’ 대신 MTV 뮤직비디오를 먼저 접했던 이승욱은 유년 시절을 록음악과 함께 보냈다고 한다. 대중가요와 일본영화의 축축한 정서를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차라리 주성치나 <총알 탄 사나이> 를 보며 낄낄거리는 다소 마이너적인 취향은, 결국 록 음악을 좋아하던 그의 유년시절부터 발기한 셈이다. “어차피 인간은 죽잖아요”라고 말하는 냉소적인 제스처, 인생의 목표를 묻자 ‘불로소득’이라고 대답하는 귀여운 치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랑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일 년 전을 뇌까리는 이승욱에게서,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청춘을 느낄 수 있었다고 축축하게 고백한다면, 그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세울까. “올해 서른 한살이에요. 청춘이라고 하기엔 늙었지요. 어느 날 뒤돌아보니 해둔 것도 없이 나이만 먹었더군요. 이젠 달라져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새 직장에 취직도 했고.” 하지만 앞으로 그가 걸어갈 길이 화려한 레드 카펫은 아닐 거라는 예상이다. 그가 선곡한 노래 ‘블렉 퍼레이드’의 바로 그 길을 당당히 걸어갈 테니까.
이승욱 (도서출판 이래 그래픽디자이너)

My Chemical Romance의 ‘Welcome To The Black Parade’가 흘러나오는 헤드폰은 Philips 제품 가격은 31,000원


담쟁이
몇 년 전, 전방위 아티스트 차지량의 특별한 낭독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꺾어진 청춘 낭독’이라는 타이틀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가 스물 다섯 즈음이었을 것이다. 파릇파릇한 청춘의 에너지가 사회의 벽에 부딪혀 꺾이는 이야기, 하지만 그 벽을 타고 다시 꿈이 꿈틀꿈틀 자라난다는 이야기. 그날 낭독회에서 차지량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 ‘담쟁이’를 불렀다. “꿈속에서 자라나는 생각들과 내 안에서 솟아나는 에너지는 저 너머를 보기 위해 점점 커져가. 짙어지는 희망의 속삭임과 깊어지는 우리들의 목소리는 저 너머를 보기 위해 점점 커져가. 향기를 맡으며 허물지 않고서, 상상을 하면서 미소를 띄우며 우리는 만날 수 있을 거야.” 다시 만난 차지량은 여전히 이 ‘꺾어진 청춘’에 대해 천착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의 노래가 마냥 서정적인, 그래서 다소 뜬 구름 잡는 소리 같았다면, 못 본 몇 년 새 차지량은 이 이야기를 구체적인 현실의 장소에서 풀어놓고 있었다. 서울역과 명동, 동대문 운동장과 홍대 앞 등 청춘들이 숨쉬고 있는 장소를 찾아 다니며 과연 이 땅의 청춘들이 어떻게 현실의 벽에 좌초되는지, 행위 예술과 설치 미술, 연극과 연주를 넘나드는 그의 퍼포먼스를 통해 표현되고 있었다. 한 개인의 성숙이자, 한 작가로서의 성장이다. “이제는 제가 하는 일에 책임감 비슷한 걸 느껴요.” 기이한 헤어스타일에, ‘찜질방’ 복장, 조인성 얼굴은 여전히 비현실적이지만 말이다.
차지량 (전방위 아티스트)

차지량의 ‘담쟁이’가 흘러나오는 헤드폰은 헤드폰은 Sennheiser 제품 가격은 59,000원


Better Together
고백하자면, 그에게서 디자이너의 삶이 얼마나 피곤하며 곤궁한지 캐물을 요량이었다. 같은 지붕 아래서 일하며 지켜본 그의 모습은, 지난 달 편집장의 표현대로 ‘마치 정글에 사는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월간 정글의 편집디자인뿐 아니라 타 기업과 기관의 사외보, 여러 행사와 페스티벌의 포스터와 팜플렛 등 외주 작업을 도맡고 있는 디자인정글 그래픽디자인 팀의 청일점 인성훈에게서, 그러니까 ‘한국에서 디자이너로서 사는 남자의 애환’을 들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박카스’라도 하나 사서 손에 들려줘야 하나 싶게 바르고 건실하다. “어느새 익숙해진 것 같아요. 회사에서 일하는 게 편해요. 퇴근하고 자취방에 혼자 있어봤자 심심하기만 하고, 차라리 야근하면서 어울려 밥 먹고 수다도 떨고 또 일하는 게 나쁘지 않아요.” 그에게 청춘이란 뽑아 쓰고 버릴 티슈 조각이 아니라, 묵묵히 한 장 한 장 풀어야 할 두루마리 휴지 같은 것일까. “재수 안하고 대학에 입학했고, 휴학 기간 없이 빠듯하게 군대에 다녀왔고, 졸업 후 바로 취직해서, 딱 한 달 반 놀아보고, 꾸준히 직장생활을 해왔네요.” 누군가는 답답해할, 누군가는 마냥 부러울 청춘이다.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방바닥을 긁고 있는 청춘들이 그렇게 바라고 바라는 ‘평범한 삶’이니까.
인성훈 (디자인정글 그래픽디자이너)

Jack Johnson의 ‘Better Together’가 흘러나오는 헤드폰은 audio-technica 제품으로 가격은 1,2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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