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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연약한 예술에 홀리다

2010-01-05

프랑스 생떼띠엔느 미술관의 관장 로랑 헤기는 “연약해 보이는 예술은 얼핏 허약하게 보일수 있지만 사실은 감성의 손끝에서 느낄 수 있는 내밀함을 뜻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내밀함을 눈으로 목도할 수 있는 자리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이어 드디어 대전에서 열린다.

에디터 | 이안나(anlee@jungle.co.kr)

로랑 헤기가 기획하고 대전시립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Fragile 여림에 매혹되다〉(이하 Fragile) 전은 예술애호가라면 누구나 기다렸을 국제전이다. 사실 국제적인 예술작품의 순항이 한국까지 다다를 수 있음에 놀랐다. 그러나 미술관에 전시된 한국, 아일랜드, 폴란드, 카메룬 등 세계 각국의 예술가 50인의 작품 200점을 목도하면서 서툰 놀라움을 거두고 감상하게 된다. 대전시립미술관과 로마 웅게리아 미술관이 공동주최하는 〈Fragile〉전은 3월 21일까지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연약한 예술의 전언을 말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소규모 공동체와 작은 역사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 경험에 내밀하고 직접적으로 다가가려는 새로운 방법에 내재된 시적 잠재력”(로랑 헤기)을 다룬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Fragile〉전의 예술가들은 거대한 역사적 담론보다는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 일상의 소소한 부분들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예를 들어, 우리 지역 청년 작가인 권인숙이 표현한 것은 대학 시절 즐겨 갔던 단골카페나 술집의 풍경으로, 이는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을 공유한 이들에게 의미를 갖는 공간이다. 케이 타케무라(Kei Takemura)는 자신의 베를린 집, 친구가 뜨개질한 꽃, 친구로부터 받은 사진 속 장면 등 자신의 기억과 체험들을 모아 작품을 만든다. 마리나 페레즈 시마오(Marina Perez Simao)의 담담한 수채 드로잉나 히라키 사와(Hiraki Sawa)의 영상은 작가의 내밀한 상상의 세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특별할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소소한 순간들. 한눈에 관객을 사로잡는 강렬함이나 자극, 또는 거대한 규모에서 오는 스펙터클 대신, 소곤소곤 귓가에 들려주는 이야기와 같은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이번 전시의 작품들에 담겨 있다. ‘그저 개인의 일상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인가?’ 라는 반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상의 소소한 순간과 사건들을 함부로 흘려 보내지 않고 섬세하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타인에 대해서도 언제라도 열려 있고 공감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 된다. 개개인의 기억 속 단골가게에 대해 소중한 추억을 갖고 있다면 타인의 단골가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며, 개인의 내밀한 꿈과 상상의 세계를 섬세하게 다루는 만큼 타인의 내면에 대해서도 호기심과 배려를 갖고 살짝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전시제목인 ‘Fragile'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연약함’이다. 부정적인 특성이나 약함의 표시라기보다는 연대와 공감, 참여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연약함은 우리 일상의 이야기들을 그저 '작고 시시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서로를 하나로 묶어주는 힘, 타인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힘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50인의 참여작가들은 드로잉, 회화, 설치, 조각 등 서로 다른 장르와 기법을 사용하고, 서로 다른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예술’을 통해 그러한 차이를 넘어서서 대화하고 공감할 수 있음을 증명해준다. 화려한 미사어구나 강한 선언문보다, 진솔한 말 한 마디가 우리 마음을 울리고 위안을 전해주듯 전의 작은 작품들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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