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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에로스, 미술을 탐닉하는 특수기호 ①

2011-02-23


인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미술에도 끝없는 에로스의 세계가 숨겨져 있다. 작가들은 에로스를 작품에 적극 끌어들이며 사회적 윤리가 허용하는 범위를 아슬아슬 넘나든다. 상대방에 대한 극한의 사랑이며 성적 감성으로 무장한 에로스가 미술로 치환되면, 그것은 한 시대가 지닌 사회성과 도덕률의 정도를 가늠케 하는 척도로 작용한다. 섹스 지향적인 코드와 성적 관음성에만 치중하는 포르노그래피와 달리, 에로스를 핵으로 완성된 미술은 야릇하고 오묘한 분위기는 지니되 정형화된 관념과 사회가 만든 세련된 억압구조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에로스를 바탕으로 한 미술은 행위와 과정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인간의 감성과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 작용한다. 에로스에 미친, 그토록 원초적인 본성을 미술로 풀어낸 이들을 만나본다.

글 | 월간 퍼블릭아트 정일주 편집팀장

은밀한, 그래서 더 애틋한 에로스
에로스를 제1요소로 삼는 현대미술 작가는 제프 쿤스(Jeff Koons), 매튜 바니(Matthew Barney), 신디 셔먼(Cyndi Sheman), 길버트와 죠지 (Gilbert & George), 채프먼 형제(Jake & Dinos Chapman), 무라카미 타카시(Murakami Takashi), 샘 테일러 우드(Sam Taylor Wood) 등 그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중 제프 쿤스는 <메이드 인 헤븐> 이란 섹스 시리즈를 통해 도대체 예술이라 부를 수 있는 기준이 어디까지인가란 화두를 던진 장본인이다. 그는 직접적으로 섹스를 사용하고, 자신의 아내인 치치올리나(작업 당시 제프 쿤스의 아내였으며 실제 포르노 배우였다)와의 성교를 작품에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많은 논란 속에도 쿤스의 작품은 미술사학자 로버트 로젠블럼으로부터 “예술이 섹스를 완전히 흡수했다.”는 평을 얻을 만큼 현대미술 역사에 하나의 획을 그은 미술로 인정받았다.

무라카미 다카시 역시 에로스 미술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작가다. 전략적으로 ‘일본의 워홀’을 자청하며 팝 아트와 오타쿠의 선두주자로 우뚝 선 다카시는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과 베르사유 궁전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타임지가 선정한 ‘2008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만든 전라의 남자가 묘한 포즈를 취한 피규어 작품 는 미국 소더비에서 1,516만 달러(약 160억원)에 낙찰되며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는 풍만한 G컵 가슴을 자랑하는 여자 피규어 과 시리즈이다. 마치 ‘현대적 춘화’와 같은 쿤스와 다카시의 작품은, 이미지 뒤에 숨겨진 작가의 생각을 읽는, 똑똑한 관람객들 덕분에 이론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

이들은 작품에 에로스를 노골적으로 끌어들인 대표 작가들이다. 그러나 에로스는 본모습을 그대로 나타내지 않고 조금 감춰져 있을 때 보다 다층적인 정의를 유도하지 않나. 매혹적이고 에로틱한 것을 지칭할 때 흔히 다 벗은 모습보다는 조금 가려진, 부드러운 란제리를 입었거나 헐렁한 셔츠를 걸친 실루엣을 꼽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사실 섹슈얼리티나 에로스란 사랑을 느끼고 향유하는 과정에서 고조되는 것이지 본능적인 욕구가 충만하게 채워졌을 때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눈부신 미모와 쭉쭉빵빵한 몸매가 아닌, 자태와 표정만으로도 에로틱함은 충분히 자아난다. 같은 맥락으로 오늘날 미술 속 에로스는 보다 진화하여 끈적끈적한 육체의 뒤엉킴이나 적나라한 노출이 없이도 화끈하게 관람객을 유혹한다. 일단 보는 이의 감성을 사로잡는 작품들은 그들로 하여금 사유하고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세련된 에로스에 빠진 미술인 중 국내 젊은 아티스트들의 활약도 눈에 띈다. 화면 가득 여인의 옆모습이 클로즈업 돼 담겨있다. 입술엔 물기가 가득 배어 있고, 귓불은 발그레하다. 거기에 장식된 진주귀걸이와 목덜미의 어지럽게 흩어진 잔머리까지 합쳐져, 어쩌면 그저 단순한 장면으로만 볼 수도 있는 그림은 여성스러움을 한껏 뿜어낸다. 이것이 김성진의 < Flutter >에 펼쳐진 에로틱함이다.

작가 신영미의 그림에는 브리프만 입은 여자 혹은 여자들이 등장한다. 온전한 제 몸뚱이 이외에 다른 장식을 전혀 하지 않은 그녀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화면 밖을 내다본다. 어떤 매혹적인 제스처나, 요염한 자태도 뽐내지 않지만 파스텔 톤 색채와 입체 보다는 평면의 느낌을 강조한 화면은 묘한 섹시미를 내포한다. 그녀들은 현실 속에서는 마주하기 힘든 상황과 조합에 놓인 채 동화 속 얘기 같기도 하고 꿈을 꾸는 듯 하기도 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실적인 기법을 고수하는 화가 박지혜의 작품엔 머리카락을 틀어 올려 훤히 보이는 목덜미나, 바람에 나풀거리는 가슴팍의 레이스, 또는 목을 한껏 뒤로 젖혀 각이 선 어깨 등이 나타난다. 한때 가면을 쓰거나 선글라스를 쓴 여자들을 그리기도 했던 작가는 최근 여인의 얼굴은 아예 보여주지 않는다. 커다랗고 쌍꺼풀이 짙은 눈매인지 도톰한 입술인지 도통 캔버스 속 주인공이 어떤 생김새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 그림들을 보고 섹시한 매력을 느끼는 것은 비단 당신뿐이 아니리라.

박미진의 화면엔 보다 정제된 에로스가 드러난다. 아름다운 나비를 잡아 박제시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의문을 갖은 작가는 그런 욕망에 본성의 눈이 가려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을 품었고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있다. 촉촉한 눈망울, 뭔가 말하려는듯 살짝 벌어진 입술이 보는 이의 감각을 자극한다. 그 동안 미술은 여성의 몸에 보이지 않는 남성의 시선을 그려 넣고, 젊고 아름다운 육체를 탐닉하는 에로스를 주로 다뤘던 것이 사실이다. 미술 또한 우리에게 에로스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독히 보수적인 시각으로 주입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미술 작가들은 나름의 툴과 스토리를 이용해 다양한 시각의 에로스를 완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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