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5
2010년 1월 12일, 수십만 명의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한 아이티 강진 소식에 많은 사람들은 함께 눈물짓고 아파하며 작은 희망이 되길 바라면서 온정의 손길을 보냈다. 하지만 지진발생 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아이티는 점점 우리의 관심 속에서 벗어나고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다. 더욱이 최근 일본에서 유래 없는 사상 최악의 대참사가 일어나 아이티의 비극은 더 깊어 잊혀 가는듯하다.
글 | 이명희 정글리포터
사진 | HARP가족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지진 이후 1년, 아이티의 상황은 아직도 매우 어렵다. 부정선거로 인한 폭력시위와 콜레라 확산 등 불안정한 치안과 사회혼란으로 주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고통 받고 있다. 이에 HARP(HAITI ARTS RELIEF PROJECT)는 아이티 아마추어 화가들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아이티 어린이 후원을 위해 아이티의 회화작품 25점을 선보이는 행사를 마련했다. 전시 수익금 전액을 아이티 사랑의 교회 백삼숙 선교사에게 전달하는 ‘아이티 돕기 제1회 그림 바자회’가 그것이다.
1. ‘노을’, 아이티의 어느 해질 무렵,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 있다. 공기 중의 빛깔을 표현하기 위해 하늘뿐만 아니라 나무 줄기나 집의 외관에 색점을 사용하여 빛의 느낌을 살리고 있다. 귀가하고 있는 여인들의 그림자의 표현이나 의상의 붓 터치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욱 고조 시킨다.
2. ‘길’,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아이티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좌우대칭이 큰 키의 나무로 강조되고 있으며 숲의 나무들은 도식화되어 간략하게만 나타난다. 인물들은 분주하게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3. ‘출항’, 섬나라인 만큼 아이티인에게 바다는 친숙한 대상이다. 하늘과 바다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전체 화면을 물 먹은 듯 푸르게 처리하고 그 안에 물길을 따라 육지로 향하는 인물들을 화려한 색채로 나타내고 있다. 아이티 국기를 단 선적에 타고 있는 화려한 원색의 인물들은 푸른 배경과 대비되어 더욱 눈에 띤다.
4. ‘풍경’, 아이티의 초록이 사라진 붉은 산을 배경으로 물가를 거니는 새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산의 모습은 아이티에서 흔히 관찰되는 풍경이다. 원래 아이티는 60%가 산악 지대를 이루어 숲이 많던 나라다. 1920년대 이후로 숲은 단지 2%만 남고 대부분 농토로 바뀌었는데 현재는 산악 지대의 침식이 심해지고 벌목이 주요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환경 파괴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아이티의 삼림 채벌 문제는 국제적으로 이슈로 최근에는 숲을 일구려는 운동이 있기도 했다.
아이티를 다녀온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지저분한 거리, 황폐한 도시 풍경이 아닌 바로 도시 곳곳에서 숨 쉬고 있는 아이티인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바로 그것이다. 매일 밤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건물의 벽과 버스에는 화려한 그림이 가득 차 있다. 길거리에서 미술품이나 조각품을 쉽게 만날 수 있고 거리의 상점에서는 손쉽게 그림을 구할 수 있다.
1. ‘시티 솔레이의 시장’, 활기차고 왁자지껄해야 해야 할 시장 풍경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인 모습이다. 중앙의 여인을 중심으로 인물의 구성은 대칭을 이루며 인물은 도식화 되어있어 자칫 단조로워 질 수 있으나 작가는 여인들의 다양한 색채의 두건과 잔뜩 이고 있는 여러 사물의 형태로 화면에 생기를 부여하고 있다.
2. ‘낙원’, 보기만 해도 아득한 높은 나무에 매달려 열매를 따는 남자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여인들의 모습이 담긴 해변의 풍경이다. 수확은 한창이고 광주리에는 열매가 가득하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 보다 풍요롭고 여유롭다. 이러한 분위기는 현재, 아니 과거부터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그들의 현실을 잠시나마 외면하고 작은 지상낙원을 이루고자 하는 그들의 염원이 반영되어있다. 아이티 특유의 원시적, 혹은 태고적 이미지를 통해 그들은 희망을 얘기하고 또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다.
3. ‘파이프를 문 남자’, 일과를 마친 거리의 악사가 파이프 담배로 하루의 피로를 녹이고 있다. 한 그루의 나무와 악기들만이 그의 벗이 되어 줄 뿐이다. 힘든 현실에도 불구하고 아이티 인들은 예술을 통해 고통을 잊고 예술을 통해 작은 희망을 꿈꾼다. 떠돌이 악사의 모습은 아이티 예술가들의 초상화인 셈이다.
일단 그들의 미술을 접하게 되면 평소에 그림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더라도 아이티인의 색채감각과 표현방식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게 된다. 미술계에서는 이러한 아이티의 그림에 대해 ‘아이티 예술의 기적’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아이티 작가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하지만 자신을 비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낙관적인 시선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흰 캔버스 천 대신 옷감을 활용하여 그림의 색다른 느낌을 부여하기도 하며, 나뭇가지를 활용한 색점을 화면 가득 채우는 새로운 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1. ‘시장 풍경’, 아이티에서는 이 작품과 같은 시장 풍경이 매우 인기 있는 주제 중에 하나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군중 속의 고독이나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동시에 순수함과 성실함을 담은 얼굴이나 대화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모습에서 희망과 행복을 엿볼 수 있다.
2. ‘해질녘’, 온통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는 오후, 물가의 여인들이 빨래에 열중하고 있다. 중앙의 붉은 태양을 중심으로 나무와 산의 형상, 물길의 형태가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 같이 화면에서 균형은 지루하지 않도록 다양한 자세나 색채표현으로 인물을 그려 그림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3. ‘가족’, 아이티 가족의 평화로운 한 때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자는 마당에서 아이를 목욕시키고 남자는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다. 물길이 지나가고 푸른 열대 우림이 우거진 곳에 평화롭게 머무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은 현재의 아이티의 현실과는 다른 지극히 이상화된 모습이다. 대형 작품과 다르게 그의 작은 사이즈의 그림들은 아이티인들의 소박함이 나타나고 평화로움이 묻어난다.
4. ‘시장 풍경’, 전경의 시장의 모습과 후경의 수확의 장면을 동시에 담고 있다. 인물은 반복적으로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세부표현은 선을 사용하여 단순화 시켰다. 아이티의 오늘날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러한 풍요로운 이미지는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해 준다.
5. ‘시장 풍경’, 아이티의 강렬한 색채가 잘 묻어나는 작품이다. 머리에 수확한 열매를 가득 담고 가는 여인들, 앉아서 쉬고 있는 사람들, 짐을 나르는 인부 등 다양한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그들은 한결 같이 강렬한 태양빛을 머금은 듯 화려한 색채의 의상을 입고 있다. 군중의 모습은 무질서 하지만 생동감 있으며, 붉은 대지와 푸른 초원의 강렬한 대비는 그들을 더욱 살아 숨 쉬게 한다.
혹자는 그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비해 아이티 작품에 나타나는 밝은 느낌이 작위적이라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하는 강한 보색 대비와 화려한 원색의 향연은 과거부터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잠시나마 외면하는 것으로, 그들은 풍요로운 이미지를 통해 희망을 말하고 또 다른 세상을 꿈꾼다. 인간의 의미와 진정한 가치가 점점 타락해가는 세상 속에서 아이티의 그림을 만난다는 것을 행운이라 말하고 싶다. 정열적이며 강렬한 그들의 그림 속에서 아이티인들의 간절한 꿈과 이상을 발견할 수 있었기에 더욱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