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04
다양한 민족과 문화, 종교가 한데 어우러진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 이곳은 현재 아시아의 문화예술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해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 1999년부터 싱가포르 정부(싱가포르 관광청)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문화강국으로서의 싱가포르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르네상스 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박물관과 도서관, 공연장 건립과 리노베이션 등 문화 인프라를 확장시키고 있으며, 다가오는 3월 15일부터 두 달간 개최될 예정인
<제3회 싱가포르비엔날레>
는 ‘Open House-the public with artist’라는 콘셉트 아래 본지의 ‘월간 「퍼블릭아트」 선정 작가’들과 일반 대중으로 구성된 팀을 싱가포르에 초청하는 문화관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월 17일, 싱가포르 정부의 제안 하에 ‘건축의 기적’이라 불리는 마리나 베이 샌즈ⓡ가 아트사이언스 뮤지엄을 개관하면서, 세계적인 건축가 모쉐 샤프디(Moshe Safdie)의 독특한 건축 양식과 함께 호텔 안팎에 설치된 ‘퍼블릭아트 컬렉션’ 10점을 선보이고 있다.
글 | 월간 퍼블릭아트 서정임 수석기자
건축과 함께 호흡하는 공공미술품
제3회>
마리나 베이 샌즈는 지난해 4월 오픈하면서, 건축 설계 과정에서부터 계획된 6명 예술가의 공공미술품 10점을 공개했다. 이 작품들은 호텔 타워 23층의 아트리움에서부터 건물 외부로 뻗어 나가 독특한 디자인 공간과 조화를 이루며 방문객들에게 시각적, 물리적,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예술의 거리를 수놓는 첫 번째 작품은 호텔 아트리움 타워 1의 허공에 매달려 있는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Drift’이다. ‘틈’이라 해석되는 이 작품은 수천 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막대들이 얽혀 있는 길이 40m, 높이 23m, 폭 15m의 대형 설치물로써, 웅크린 사람을 형상화한 다면적 매트릭스이다. 여기에서는 신체를 공간의 개념으로 확장시켜 4면체, 6면체, 12면체, 혹은 더 복잡한 다면체 구조물로 바꾸는 곰리 특유의 신체성에 대한 탐구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이로써 구조물 사이의 ‘틈’을 통해 사람들에게 구조의 복잡성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인도하며, 동시에 신체를 지구뿐 아니라 우주와도 연결 지을 수 있는 자유로운 열린 공간으로 인식케 한다.
‘Drift’가 허공을 떠다니는 동안, 바로 밑에는 중국 출신의 미국에서 활동 중인 종빈 정(Chongbin Zheng)의 사기로 만들어진 대형 도자기 화분 83점(‘Rising Forest’)이 아트리움 곳곳에 세워져 있다. 이 화분의 높이는 각각 약 3m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화분에는 실재로 커다란 열대나무가 심어져 자라나고 있다.
아트리움에서 한층 아래로 내려오면, 현대 건축 외피의 착시현상을 이용하는 빛의 마법사 제임스 카펜터(James Carpenter)의 ‘Blue Reflection Facade with Light Entry Passage’(길이 112m, 높이 17m)가 자리 잡고 있다. 카지노 외벽 밖에 총 80개의 금속판과 200개의 유리판을 수직으로 설치한 작품은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다양한 색채의 향연을 펼치고, 나선형의 파사드를 금속·유리판의 움직임으로 유연하게 만들고 있다.
마리나 베이 샌즈에는 미국 조각가 네드 칸(Ned Kahn)의 작품이 3점이나 설치되어 있는데, 그는 이곳 건축물에 붙여진 ‘최첨단 기술’, 혹은 ‘최대 규모’라는 수식어에 가장 걸맞은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서측 아트리움 외부에 설치된 금속 조각 작품 ‘Wind Arbor’(높이 112m, 가로 17m, 넓이 약 6,800평방미터)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설치돼 차광효과와 바람, 일사량에 따라 형태를 변화한다. 특히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닮은 26만 개의 넓은 알루미늄 판금은 바람이 불 때마다 움직이며 빛을 반짝인다. 작가는 무형의 바람을 유형의 결과물로 제시함으로써 바람을 잡는다는 것이 우주와 소통하는 것임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쇼핑몰과 해안 산책로의 교차로에 위치한 대형 아크릴과 스테인리스 스틸 구조물 ‘Rain Oculus’는 ‘눈’ 모양의 거대한 둥근 창 한 가운데의 구멍을 통해 약 90톤의 물이 떨어지며 산책로에 일시적인 소용돌이를 연출한다. 또한 호텔 남쪽 끝에 인접한 냉각탑에는 기계로 작동하는 7천 개의 수로가 물이 채워짐에 따라 시소처럼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아래로 물을 쏟아내는 ‘Tipping Wall‘이 설치되어 있다.
이외에도 가든 베이 다리에 잔 왕(Zhan Wang)의 ‘인공바위 #71’과 ‘#86’이 위치해 있는데, 이 작품은 중국 지식인 층 사이에서 아름답고 복잡한 매력으로 인해 선호된 선비 바위를 반짝이는 인공소재로 만들어 급격하게 변화하는 중국의 현대화 과정을 상징화한 것이다. 마리나 베이 샌즈와 지하철역 베이프론트 MRT를 연결하는 통로에는 솔 르윗(Sol LeWitt)의 대형 벽화 ‘#917, Arcs and Circles, 1999’가 화려한 색채와 함께 기하학적 패턴이 배치되어 있다.
싱가포르에 핀 연꽃, 아트사이언스 뮤지엄
마리나 베이 샌즈에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미술향유 지점은 앞서 간단히 언급한 아트사이언스 뮤지엄이다. 이 뮤지엄은 건축가 모쉐 샤프디에 의해 기하학적으로 디자인되었으며 물 위에 연꽃이 피어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이러한 건축 의도에 대해 모쉐 샤프디는 “건축이 가진 모든 디자인적 요소는 예술과 과학의 연결 속에서 얻어지는 창조의 철학을 강화시킨다. 또한 미학적이고 기능적인, 시각적이고 테크놀로지적인 것을 결합한다. 사실상 이곳은 싱가포르의 진보적인 정신을 대표하는 것이자 문화적 건축의 상징이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뮤지엄 내부의 각각 갤러리들이 유연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상호보완성에 힘썼다.”며 “이곳은 현재 미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 환경과 뮤지엄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며 점차 완성되어지고 성장해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한 건축가의 철학을 반영하듯 아트사이언스 뮤지엄의 전시프로그램은 상설전시 3개와 기획전 3개로 구성돼 순수예술과 미디어, 테크놀로지, 디자인, 건축 등이 서로 관계를 맺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3층 ‘떠다니는 계단’에서 시작돼 4층 공간 전체로 이어지는 상설전의 경우 예술과 과학의 경계에 대해 재고하는 ‘호기심(Curiosity)’섹션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다. 그 다음 섹션은 예술과 과학 두 영역이 가진 천재성의 상호작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감(Inspiration)’. 이 전시장 내의 설치물 6점은 발명의 순간을 보여주는데, 주요 전시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나는 기계’, 공밍 초롱, 첨단 로봇 물고기, 버키볼 분자 모델, 고대 중국 두루마리 책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상설전의 마지막 섹션은 역동적인 멀티미디어 갤러리 ‘표현(Expression)’으로,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인류가 영감을 어떻게 사용해왔는가를 제시한다. 갤러리의 둥근 벽에 특수 조명효과와 음향, 이미지 이동 효과를 사용해 미디어 프리젠테이션 공간에서 위대한 예술과학자들, 즉 레오나르도 다빈치, 루반, 그리고 모쉐 샤프디 등 이들의 아이디어와 구현된 형상을 다이내믹한 비주얼 공간을 통해 쉽게 풀어준다. 이외에도 관람자가 자신이 찾은 결과물을 터치스크린에서 페이스북이나 이메일로 전송해 지인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한다.
한편, 이번 개관 기념 기획전으로는 ‘칭기즈칸’전과 ‘실크로드’전, ‘난파선: 당나라 보물 몬순 풍’전이 마련되었다. 먼저 ‘칭기즈칸’전은 익히 알려진 칭기즈칸의 업적을 열거하며, 금 보석과 장식, 실크 겉옷, 도자기, 미이라 등등 200개의 보물과 함께 보여준다. 또 다른 기획전 ‘실크로드를 여행하다: 근대 세계로 가는 고대의 경로’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소장품을 대여해온 것으로서, 유물과 함께 주로 체험형 전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 전시는 3월 27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바로 옆 전시장에서 이어지는 ‘난파선: 당나라 보물 몬순 풍’전은 난파선 유적으로서, 수세기 전 동남아를 거친 동양과 서양의 해양 실크로드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 전시는 스미소니언 인스티튜트의 아시아미술관 프리어갤러리와 아서 M 색클러갤러리에 의해 기획되었다.
마리나 베이 샌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이러한 두 가지 예술프로젝트가 앞으로 이곳을 찾는 방문객에게 유익한 시간을 제공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 퍼블릭아트 프로젝트는 장소성을 고려하면서, 예술적인 감성까지 지니고 있어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관전으로 선보인 아트사이언스 뮤지엄의 6개 전시는 현대적인 건물양식에 맞지 않을 정도로 ‘통상적’이고 ‘고전적’이었다. 상설전은 평범한 내용을 시각적, 기술적인 화려함으로 과장시켰으며, 칭기즈칸이나 실크로드 전시는 여타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흔히 접해왔던 식상한 주제라 변별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아트사이언스’라는 명칭에 부합하는 뮤지엄의 정체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탐 잘러(Tom Zaller) 관장이 정통큐레이터라기 보다는 한 기업의 CEO로서 지난 20년 간 엔터테인먼트와 전시산업, 마케팅, 특히 블록버스터 전시에 주력해온 인물임을 고려할 때, 이곳에 얼마나 기획력 있는 콘텐츠를 담아낼 지는 아직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