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07
‘양질의 점토로 구워낸 토기류’로 요약되는 테라코타는 인류의 역사를 장식해온 것으로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인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테라코타는 흙을 구워 만든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었을 과거 사람들뿐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여러 의미를 전해주고 있다. 특히 환경과 자연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은 자연 그 자체인 테라코타의 가치를 더욱 눈여겨보게 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조형물로서 예술작품으로서 우리의 곁에 있어온 테라코타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시점이 온 것이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 |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제공
원시적 재료로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중요한 역할을 해온 테라코타에 대한 관심은 근대기 이후 새로운 문물의 등장으로 인해 줄어들었지만 현재 지구의 상태는 그에 대한 재조명을 필요로 하고 있다. 건축도자의 숨겨진 가치를 발견하고 전달하고자 노력해온 클레이아크미술관이 지난 5년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5년을 맞이하며 새롭게 내놓은 슬로건은 ‘자연을 닮은 예술’. 그 무엇보다도 자연이 간절한 지금, 클레이아크미술관은 자연의 일부인 흙으로 지어진 도자건축의 새로운 면모를 선보이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신비의 정원’, ‘진화’, ‘타자들’, ‘원시적 미래’ 등 네 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신비의 정원’은 신비한 테라코타의 세계로의 입장을 알리는 관문이자 자연과 인간의 관계, 테라코타와 미래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번 전시를 짐작케 하는 역할을 한다. 조경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전은정 작가는 전시장 내에 실제 대나무를 심었다. 원형 전시관의 둘레를 따라 가장 김해답고 자생력이 높은 식물인 대나무를 심고 그 뒤로는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담아낸 배병우 작가의 사진 작품을 라이트 박스로 설치, 두 풍경을 오버랩 시켰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테라코타로 만든 사각형의 정자를 두어 대나무 담장 너머로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람 또는 자연물의 이미지들을 작은 구멍으로 새겨 넣은 최홍선 작가는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순환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두 번째 섹션인 ‘진화’에서는 자연의 일부인 흙과 불과 물이 서로 만나 새롭게 이루어내는 형상들을 볼 수 있다. 기술력이 발전하면서 색상과 질감 등 다양한 흙의 물성 표현이 가능해졌는데 이러한 다양한 표현기법에 의한 작품들을 통해 도예기술을 소개, 다채롭게 구현된 기능과 예술적 표현들을 선보인다. 일본작가 호시노 사토루는 산사태를 경험하면서 새롭게 느낀 흙의 물성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광활한 대자연을 표현하는 그의 설치작품은 수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흙의 다양한 변형가능성을 보여준다. 원경환 작가는 129피스로 이루어진 검은 도자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유약이 아닌 가마연료에서 생기는 매연을 흡착시켜 만들어낸 검은 빛은 자연의 색으로, 자연스럽게 바닥에 놓인 작품들의 유기적인 면모를 더욱 부가시킨다. 인간의 고통을 흙을 통해 치유하고자하는 로손 오이칸의 작품은 2m의 붉은 색 테라코타 작품으로 아프리카의 흰 개미집을 연상시킨다.
자연에서 온 재료는 진화의 과정을 거쳐 이제 나를 표현하고 타자를 관찰하는 매개로 이어지는데 이를 표현한 것이 세 번째 섹션 ‘타자들’이다. ‘타자’는 나와 관계없는 남을 일컫지만 ‘나’는 타자와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타자에는 결국 우리 모두가 포함된다. 내 이웃, 주변인 등의 모습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한국의 대표적 테라코타 여성작가인 한애규 작가의 보통사람들을 성자의 모습으로 작품들과 아키오 다카모리의 인종에 대한 선입견에서부터 비롯된 인물상, 어린이 군대를 통해 전쟁의 파괴력과 폭력성을 표현한 마리아나 헤이어달의 작품과 이재준 작가의 테라코타로 제작된 대형 인물상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네 번째 섹션은 인류의 정착생활과 함께 시작되어 인간을 보호하는 건축재로, 인간의 감성을 감싸는 예술품으로 사용되어 온 테라코타의 미래의 모습, 그 가능성을 전하는 ‘원시적 미래’이다. 장신구 및 공예로서의 테라코타를 연상시키는 이화윤 작가의 작품, 몸을 보호하는 의복 및 무기로서의 기능을 연상시키는 야세르 발르만의 작품, 장식적 기능과 공예적 기능을 겸비한 주후식 작가의 작품, 건축적 철학을 선보이는 만프레드 에메네거-칸츠러의 작품, 흙으로 만들고 굽는 과정을 통해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테라코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라 린들린의 작품, 흙과 풀을 통해 서로를 돌보아가는 자연과 우리의 관계를 보여주는 제프 슈무키의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전시되는 세계의 테라코타 건축 사진은 기원전 600년경의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건축물부터 뉴욕의 디자인미술관이나 한국의 교보타워 등 테라코타로 축조되거나 시공된 세계 각국의 테라코타 건축사진 15점을 선보인다. 또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도시 만들기-1kg 건축’의 결과물을 공개한다. 관람객들에게 1kg의 흙을 제공하고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을 상상해서 만들도록 한 이 프로젝트는 1,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시민들이 직접 만든 ‘친환경 자연도시’가 전시를 마무리 짓는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테라코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지만 미래에 더욱 그 가치를 내뿜을 테라코타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이 전시는 단지 테라코타 자체를 조명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흙이 지닌 가치를 보여주고 인간과 그것이 공존하는 모습을 통해 자연의 일부인 우리가 가져야 할 철학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전시는 그래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테라코타, 원시적 미래전은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8월 28일까지 열린다.
www.clayarc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