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8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신나는 미술관-라이트 아트의 신비로운 세계’가 6월 9일부터 8월 28일까지 열리고 있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르 중 하나인 라이트 아트를 소개하는 이 전시에는 이갑열, 성동훈, 하원, 전가영 등 15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글 | 최여정 미술사(yeojungc@feelgn.net)
전시는 1층의 1전시실과 2층의 2, 3전시실 그리고 영상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조각과 설치작품, 영상물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고 연출된 작품들은 특정 순서나 주제에 따라 묶인 게 아니라, 각 작품이 활용하고 있는 빛의 특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빛이 관객의 시선과 작품감상에 미치는 영향을 경험할 수 있도록 연출된 전시공간에서 관객은 적극적으로 작품과 마주하게 된다. 일반적인 개념의 미술관은 하얀 벽면에 그림과 조각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고, 환한 불빛 아래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다. 하 지만 ‘신나는 미술관’은 캄캄하고 시끄럽다. 관람객은 빛을 쫓아 움직인다. 빛을 쫓아 찾아간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빛에 반해 박수를 치거나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고, 혹은 몸을 움직여서 작품에 변형을 가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비록 관객이 전시장이라는 공간에서는 빛을 쫓아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이지만, 작품 앞에서는 능동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미술관에서는 작품이 던진 메시지를 받기만 했다면 이곳에서 관객은 작품과 소통한다.
이 갑열의
<호모 사피엔스-찬란한 진화>
는 아름답다. 남녀누드 조각 여러 개가 천장에 매달려 있고, 그 조각에 달린 수백 갈래의 광섬유가 바닥까지 드리워져 있다. 다양한 색의 불빛이 끊임없이 반짝거리는 남녀몸통의 표면은 마치 오색비늘이 뒤덮인 비단잉어와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회용 플라스틱 숟가락의 볼록한 부분이 반복적으로 겹쳐진 모습이다.
<호모 사피엔스>
는 관객이 만드는 박수와 같은 소리에 반응하여 색을 바꾼다. 이갑열의 작품은 우리가 흔히 보아온 고전적 서양미의 비율에 맞춘 아름다운 나체이다. 하지만 표면적인 아름다움에 그치는 게 아니라, 관객의 이목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반짝거리고 있고, 박수를 치며 관심을 보인 관객에게 색을 바꾸며 반응한다. 김춘수 시인이
<꽃>
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한 것처럼
<호모 사피엔스>
는 관객이 주는 소리와 관심이 없다면 단지 아름다운 누드조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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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열의 작품이 아름다운 형상으로 관객의 마음에 다가가는 반면, 성동훈의
<머릿속으로>
는 차갑고 단단하며 괴기스러운 머리 형상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철로 투박하게 만들어진 거대한 두상과 조악한 이목구비의 얼굴은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리게 한다. 가까이 다가가기 망설여지지만, 얼핏 봐도 얼굴의 좌우가 열리게끔 고안된 모습에 궁금증이 커진다. 호기심을 안고 조심스레 한걸음씩 ‘머릿속으로’ 향하다 보면 갑자기 어떤 신호도 없이 얼굴의 좌우가 갈라진다.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서서히 열린 머리 속은 파란 불빛이 밝히고 있고, 돼지, 기차,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등의 여러 사물이 정해진 범위 내에서 돌고 있다.
< 머릿속으로>의 단단한 철로 만들어진 흉한 얼굴의 모습은 낯설고 두려워서 가까이 가기 어렵게 만드는 벽과 같지만, 다가가면 그 머리는 흔쾌히 속내를 드러내 보여준다. 흔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만과 편견, 불신과 같은 것들이 다가가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라고 한다.
<머릿속으로>
는 관심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서 다가간다면 금방 허물어 질 수 있는 게 편견과 불신의 벽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갑열과 성동훈의 작품은 아름답거나 흉한 외적인 모습으로 내면까지 단순하게 판단하지 말고 가까이 다가가서 소통하라고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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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영의
<휘파람 부는 바다>
는 휘파람이 관객의 귀를 속삭이는 달콤한 바다이자, 각종 색깔이 물결치는 무지개빛 바다이다. 각종 색깔의 보색대비와 색깔들이 점진적으로 혼합되어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의 눈과 마음을 움직인다. 일렁이는 색물결은 무한하게 수평선을 넓히며 퍼져나가서, 위와 아래의 구분을 어렵게 하며 그 끝을 알 수 없게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결은 바닥에서 올라온 빛이 정사각형과 직사각형, 사다리꼴 등 다양한 모양의 사각형 틀에 붙인 한지를 통과하여, 사방에 붙은 거울에 반사되는 움직임이 무한히 반복되어서 나타난다. < 휘파람 부는 바다>의 사각형 공간과 사각형 통로, 사각형 거울과 사각형 한지 틀은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직선으로 이뤄진 인위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관객은 빛과 소리, 물결 같은 원초적인 자연요소들을 느끼고 바다를 떠올린다. 『체험적인 예술』이라는 글에서 저자 한행길은 현재 많은 젊은 작가들이 ‘선과 숭고의 미적 감수성을 연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들에게(는) 예술작품이란 고요한 정서상태를 조장하는 매체이거나 관객으로 하여금 숭고를 경험하게 하는 지각적 변동요인이다’고 했다. 전가영은 그녀가 창조한 인위적인 공간에서 관객이 바다를 연상하며 순수한 자연을 체험하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휘파람>
전가영과 달리 하원은 ‘Breaking Waves’에서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파도소리를 들려주고 거울에 반사된 빛의 움직임으로 부서지는 파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주 커다란 텅 빈 공간의 한 쪽 벽은 거울로 덮여 있고, 천장의 중앙에 달린 프로젝터가 거울을 향해 빛을 쏜다. 거울에 반사된 빛은 텅 빈 공간에 있는 관객을 지나 반대편 벽으로 잔잔하게 퍼져 나간다. 은은한 빛과 고요한 파도 소리는 관객을 품는다. 전가영과 하원의 작품의 빛은 고요하고 따스하며 포근하며 자연을 느끼게 한다. 한 편 이 전시에는 자연 뿐만 아니라 차가운 도시에서도 빛이 주는 따뜻함을 주목하는 작품이 있다. 강은구의
<도시를 그리다>
에서 평면으로 철제 조각된 마천루와 도로, 거리의 사람들은 주황색 불빛으로 환한 도시야경 속에 있다. 도시는 차갑고 냉정한 삶의 터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산 위에서 내려다 보거나 밤하늘을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주황색 가로등이 따뜻하게 품어주고 있다. 그때 도시는 내 가족과 이웃이 살아가는 정답고 따뜻한 삶의 공간이다.
‘신나는 미술관-라이트 아트의 신비로운 세계’는 빛을 표현하는 다양한 도구와 철, 한지, 일회용 숟가락과 같은 재료의 창의적인 결합을 통해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전시공간에서 관객은 수동적으로 큐레이터나 작가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존재였다면,
<신나는 미술관>
에서 관객은 적극적으로 작품과 상호소통하는 색다른 경험을 한다. 또한 관객은 빛이 주는 차갑고 따뜻하며 혹은 날카로운 느낌 속에서 작품 속에서 인간의 내면과 도시와 자연공간을 생각하게 된다.
* 인용
그물과 유체/ 한행길/아침미디어/200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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