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1
처음 본 그 그림이 인상적이었던 건,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저마다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 몸부림을 치고 있고, 작가는 그들의 몸부림을 담담하게 바라 본다. 아니, 자신 역시 그 욕망 속 주체라도 되는 양 작가가 묘사한 등장인물들의 표정은 저마다 생생하다. 욕망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마는 이토록 생생하게 삶의 순간들을 훑는 그림은 흔치 않을 것. 일상적 욕망의 밑바닥에서 작가는 이렇게 외친다. ‘오늘 한 번 죽어 볼랍니다!’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자료제공 | 갤러리 아트힐
식욕과 성욕, 그리고 배설에의 욕구. 고귀하고 싶지만 고귀할 수 없는 인간의 대표적인 욕망이다. 금요일 저녁에 강남역과 홍대앞, 그리고 종로를 뒤덮는 사람들의 물결은 이 세 가지 욕구를 극명하게 서사하는 증거라 할 수 있을 것. 한 무리의 취객들이 만들어놓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일상은 외려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슬프다. 변윤희 작가의 작품들은 이러한 사람들의 일상에 주목한다. 수원시 영통에 위치한 갤러리 아트힐에서 9월 10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 ‘오늘 한번 죽어볼랍니다’는 2008년부터 작가가 선보여온 식욕과 성욕, 그리고 배설의 욕구에 관한 작품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이다. 또한 이번 전시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기존 작업에 대한 마무리를 짓는 시간임과 동시에 앞으로의 작업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이기 때문이기도.
변윤희의 그림은 독특하다. 욕망과 이야기가 절제된 여타의 회화와는 달리, 그의 그림은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듯 강렬하다. 대범하게 화폭을 가득 메운 인물들의 에너지는 색다르게 발산된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욕망이 이끄는 행위들을 진행한다. 어느 저녁의 풍경 속, 룸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끊임없이 술을 마시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자리에 앉은 아가씨의 치마 속을 더듬는다. 이런 정제되지 않은 감정은 대담한 화면 구성에서, 혹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듯하다. 이들의 표정은 너무나 생생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의 작품 도처에 등장한다. TV에 등장하는 섹시한 여배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군인 아저씨들의 모습은 미처 발산되지 않은 욕망을 이야기한다. 또한 ‘미안합니다. 술을 많이 마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는 숙취의 아침, 한 침대에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쓰러져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을 통해 간밤에 벌어졌던 일들을 짐작하게 한다. 변윤희의 이런 작품들은 그의 그림이 관념적이기 보다는 현실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면서, 좀 거창하게 말해 사회를 지탱해주는 힘이고 원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욕과 성욕은 여러 경로로 사회와 제도에 의해 억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현대인의 병리적 현상의 원인으로 작용해왔다. 변윤희는 식욕과 성욕을 매개로 바로 이런 현대인의 병리적 현상을 화폭에 담아왔다. 때로는 과장되게, 그리고 더러는 코믹하게 그려낸 이 병리적 현상의 지점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을 넘어 현대인의 보편적인 초상으로까지 확장된다.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게 만드는, 약간은 불편한 공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