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아트 | 리뷰

재현의 미학

2011-10-10


사진은 재현의 매체이다. 아니, 정정. 사진은 재현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매체이다. 이 두 문장의 간극은 근래 한국을 비롯한 세계적인 사진 작업 트렌드의 핵심에 위치한다. 많은 사진작가들이 이 행간의 세계를 작업의 개념, 원리, 트릭으로 응용하고 확장한다. 여기에 '회화 같은 사진' 등의 좀 더 친절한 수식이 붙을 때도 있다.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사진은 재현한다. 무엇을? 그 순간 카메라 앞에 존재했던 어떤 것을. 그러나 이것을 정직한 의미의 재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사진을 통해 존재의 시각적인 과거 형태를 짐작할 수 있지만 그것을 만지거나 순간의 정황을 온전히 기억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 무력함은 기억의 왜곡과 편집 같은 사용자의 지각 혹은 윤리의 판단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카메라는 무질서한 시간의 혼돈 속 흐름을 무심코 가로지를 뿐이다. 그런데 가끔 이 무표정한 결과물에서 놀라운 발견들이 포착된다.

글 | 월간 퍼블릭아트 조숙현 객원기자
사진 | 서지연


가상과 현실의 경계의 모호함과 사진의 기록성에 기반을 둔 존재의 영속성은 한성필 작품 세계의 궤도를 맴돈다. 여기서의 '가상'은 으레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상상 속 정원이나 환상의 유토피아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이야기하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는 주변에 산재하지만 무의식의 영역에 놓여 있는 것들이다. 우리의 현실은 우리의 예측과는 달리 결코 투명하거나 명확하지 않다. 현실은 자신의 이미지와 속성을 복제하고 확장하고 끊임없이 본 모습을 감추며 숨바꼭질을 한다. 예를 들어 볼까? 그가 유럽에서 찍은 파사드 작업 시리즈의 하나인 <야누스 (janus, 2006)> 는 어떠한 합성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보수 중인 건물의 반을 가리고 있는 차단막은 성형 전의 원형과 성형 후의 청사진을 동시에 드러내며 관객을 현혹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진의 힘을 빌은 복제는 나름의 독특한 아우라를 내뿜는다. 자, 이제 관객은 정말 헛갈리기 시작한다. 파사드 뒤에 감추어진 실재, 그것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으며 진짜는 무엇인가? 복제가 오리지널에 근접한 가치를 창출한다면 아직 원조의 가치는 유효한 것인가? 사진은 창작의 수단 중에서 실재에 가장 가깝게 재현했지만 여전히 허구라는 태생적 한계를 갖는다. 그렇다면 사진이 실재를 재현한다는 명제의 기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사진이라는 미디어의 신기축은 무엇인가? 한성필은 그 오리지널리티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잘 알려져 있는 그의 파사드 작업 외에 ‘Facade : face_cade’의 연장선상에 있는 ‘재현 : 제현 (再現 : 製現 / RE : Representation)’은 사진 속에 등장하는 재현의 대상이 되는 실재를 만들어 내고 이를 다시 사진 이미지화하여, 만들어진 실재와 같은 공간 속에 병치시켜 다시 한 번 사진의 프레임 속에 존재를 재현하는 작업이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인 구 전남 도청의 입구에는 같은 형식의 대칭형 벽면과 대리석 돌계단이 남아 있다. ‘사진적 데칼코마니 (Photographed Decalcomanie)’ / ‘회화적 데칼코마니 (Painted Decalcomanie)’ 작품은 동쪽 측면으로써 아침 해가 들 무렵 사진으로 촬영하고 아침볕이 들지 않는 어두운 서쪽 벽면을 촬영된 동쪽 벽면 사진을 기본으로 아크릴 물감으로 빛을 새롭게 그려 다시 사진으로 제작하여 사진으로써 회화 매체인 데칼코마니를 개념적으로 재현한다. 과거 광주민주항쟁의 역사적 행적의 드라마틱한 순간을 간직하고 있는 구 전남 도청에 걸려 있는 우뚝 솟은 최첨단의 신 전남 도청의 사진은 과거 광주의 구 전남 도청이 기능을 수행할 무렵 미래의 청사진이자 이미지가 보여주는 욕망의 한 단편이다. 동시에 한성필 작가에게 구 전남도청에 남아있는 신 전남 도청의 사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의 선형성과 오래됨과 새로움이라는 공간의 조형성이 복잡다단하게 엉킨 실타래와 같다. 그가 이 공간을 촬영하고 촬영된 사진을 기존 철제 프레임에 설치한 후 다시 사진으로 촬영하여 제작한 것이 <페이드인 (fade in) 페이드 아웃 out)> 이다. 공간 속의 공간, 사진 속의 사진을 재현하는 방법으로 진행된 이 작업들은 그가 지속적으로 천착하고 있는 재현과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물음을 또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하고 해석해 보고자 함에 있다.


그는 최근 설치와 영상 작업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창작에 개입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린 마르크스와 앵겔스의 동상 작업이 그 예에 해당한다. 베를린에 위치한 사회주의의 상징적 화석인 이 동상은 자본주의의 효용성 규칙-지하철 공사-에 따라 이전하게 되었다. (한 때 자본주의 원척 지역을 향수하며 동쪽을 향하던 이들의 방향은 이제 서쪽을 향하고 있다) 한성필은 이 동상의 복제를 전시장으로 고스란히 이전함으로써 2차원적인 사진의 한계를 3차원적인 재현으로 제시하며 관객의 반응을 살핀다. 또한 동상 이전의 기록 궤적을 영상으로 남긴다. 사진의 전통적인 기록적 가치에 추가한 아카이브의 재현. 그의 사진은 이렇게 사진의 '진정성 콤플렉스'를 극복한다.



한성필은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9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 영국 런던 킹스톤 대학(Kingston University)에서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UNESCO-Aschberg Bursaries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2004, 인도네시아 반둥), COMAC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2005, 프랑스 상파뉴), Cite internationale des Arts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2006, 프랑스 파리), 의재 창작 스튜디오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2007, 전라도 광주), Sirus Arts Centre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2007, 아일랜드 코크), Cite Internationale des Arts-삼성문화재단 후원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2008, 프랑스 파리) 등 다양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개인전으로 (2004, 미국 텍사스 휴스턴 Headquarters gallery), (2005, 독일 프랑크푸르트 Goethe Institute), (2006, 슬로바키아 사진의 달 Open Gallery), (2007, 갤러리 잔다리), (2011 제12회 스페인 꼬르도바 사진 비엔날레), (2011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등을 개최했다.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