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 몇몇 작품에 나비가 등장하여 나비 자체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며 이 떠오르는 것은 현실과 꿈의 경계, 대상과 대상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본래 미디어 아트라는 것이 현실과 가상이 혼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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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그는 나비다

2011-11-08


지난 10월 5일부터 11월 4일까지 미디어 아트 전문기관인 아트센터 나비에서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개인전 <명화가 살아있다! (les peintures vivantes)> 가 열렸다. 이번 전시는 개관 10년 동안 단 한 번도 개인전이 열리지 않았던 아트센터 나비에서 처음으로 한 작가에게 그 문을 연 것이라 관심이 쏠리기도 하였다.

글 | 구선아 객원기자
사진제공 | 아트센터 나비
에디터 | 최동은( dechoi@jungle.co.kr)


혹자들이 '제2의 백남준'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이남은 컨버전스 분야의 세계 석학인 미국 컬럼비아대학 존 라이크만 교수로부터 극찬을 받은 미디어 아티스트다. 작년 G20 서울정상회의 때는 TV와 아이패드, 갤럭시탭을 사용하여 작품을 설치해 호평을 받았고, 올해는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작품이 실리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요즘 그는 ‘대세’라 할 수 있다.

이이남는 액자에 걸린, 네모난 틀에 갇혀 있던 회화를 벗어나 TV와 개인 디지털 디바이스를 사용하며, 김홍도, 김정희, 정선, 신윤복 등의 동양화부터 모네, 고흐, 베르메르 등의 서양화까지 세기의 회화 작품에 디지털 애니메이션 기법을 도입해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듯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회화 작품을 통해 작가는 미디어 아트는 어렵다는 대중의 인식을 깨고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이이남의 작품을 보면

"나는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닌다.
그러다가 문득 깨어보니 장주가 되어 있다. 대체 장주인 자기가 꿈 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인 자기가 꿈에서 장주가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여기서 장주와 나비는 분명 별개인 듯 하나 그 구별이 애매하고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그리고 그 구별의 경계는 어디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는 <장자> 의 <제물론편(齊物論篇)> 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 이야기가 떠오르곤 한다.

이이남의 대표작 <신-조충도> 나 <8폭 병풍> 외 몇몇 작품에 나비가 등장하여 나비 자체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며 <호접몽> 이 떠오르는 것은 현실과 꿈의 경계, 대상과 대상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본래 미디어 아트라는 것이 현실과 가상이 혼재하는 것이나, 그는 현실과 꿈 즉, 상상의 경계와 그 경계 언저리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을 새롭게 구성하여 이야기를 만든다. 이는 그가 대상과 대상의 관계를 이전과 다르게 재조직하고 시점의 맥락을 바꾸면서 현실과 꿈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이이남의 작품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고금의 시간을 건너고 동서양의 공간을 뛰어 넘는다.

이번 개인전은 <모네와 소치의 대화> 와 <크로스오버 쇠라> , <신-금강전도> , <묵죽도> 그리고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등의 비디오 작품 7점과 항아리를 이용한 <달 항아리>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1점, 그리고 작가의 앱이 내장된 아이패드 등을 선보였다. 또한 아트센터 나비는 전시장이 위치하고 있는 층의 로비와 전시장 그리고 전시장 옆에 마련된 카페까지 모두 전시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없는 이이남 작가의 작품만큼이나 경계가 모호한 전시공간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관람 방법을 제시했다.


이번 <명화가 살아있다!> 전에서 꿈과 현실의 경계를 가장 자유로이 넘나든 작품은 <모네와 소치의 대화> (2008)와 <크로스오버 쇠라> (2011)였다.

<모네와 소치의 대화> 에서는 클로드 모네와 소치, 허련이라는 동서양 풍경화 대가들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모네의 <해돋이, 인상> 과 소치의 <추경산수화> 가 각각의 화면에서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 내다가 <추경산수화> 의 섬은 모네의 그림 속으로, <해돋이, 인상> 의 배 한척은 소치의 그림 속으로 이동한다. 한척의 배라는 대상이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어색함은 전혀 없다.

<크리스오버 쇠라> 는 조르주 쇠라의 <아르니에르에서의 물놀이> 와 <그랑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 남농 허건의 <산수화> 를 디지털 삼면화하여 결합시킨 것으로 파노라마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존 회화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꼴라주 형식으로 그리고 다시 일체화 된 회화적 표현으로 바뀌면서 마치 한 장소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리고 가장 꿈같은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였던 작품은 <신-금강전도> (2009)로 겸재 정선이 제작한 <금강전도> 에 디지털 기술과 상상력을 더한 것이다. 작품의 배경이 된 1734년 겨울은 2009년으로 건너와 그 풍경에 사계절이 덮이고, 고층빌딩의 네온사인을 빛내며 헬리콥터와 전투기가 돌연 화면으로 날아든다. 정선의 <금강전도> 는 자신의 주관적인 시점으로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이고 이이남의 <신-금강전도> 역시 현재의 금강산을 바라본 정치적 시각은 물론 사회적, 경제적인 시각을 주관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현실의 한 순간을 서정적이면서도 몽환적으로 표현한 <묵죽도> (2010)는 약 200년 전에 그려진 김홍도의 작품에 디지털 기법을 이용하여 생명을 불어넣었다.

"바람이 분다. 대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조금씩 흔들린다.
눈이 내린다. 눈이 내려 대나무 위에 소복소복 눈이 쌓이고 눈의 무게만큼 대나무 줄기가 휘어진다.
그리고 눈이 녹는다."

작품은 눈이 서서히 녹으면서 다시 바람이 부는 듯한 영상으로 변환된다. 차분하고 고요한 시간이 스크린 사이로 흐르며 시간과 시간이 만난다. 빠른 시간의 변화는 이렇게 느린 표현으로 전개되며 가을과 겨울 그리고 또 다시 봄 혹은 가을로 반복된다.


디지털 기술 때문에 빠르게 변화한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렇게 그의 작품은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잡는다.

미술사학자 다니엘 아라스는 "관객들이 한 그림 앞에 최소한 5분만 서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에 비하면 이이남은 관객의 5분을 온전히 빼앗는데 성공한 작가다. 짧게는 2분, 길게는 10분이 넘는 러닝타임임에도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시간은 지루하지 않다. 이는 나비가 날고 바람에 나뭇가지가 휘날리고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애니매이션 기술 때문이 아니다. 여기서 디지털 기술과 디지털 디바이스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이이남의 작품이 이토록 관객의 눈과 발길을 끌고 있는 것은 동양화와 서양화 속에서 대중이 원하는 미학적 코드를 찾아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의도되었던, 의도되지 않았던 간간이 드러나는 그만의 해학적 웃음코드도 여기에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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