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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진정한 공공미술을 갈망하다

2012-02-15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옛 건축물미술‘장식’제도가 건축물미술‘작품’제도로 개정됐다. 개정안에서 가장 눈에 띠는 점은 ‘선택적 기금제’의 도입이다. 개정안에 따라 건축주는 기존처럼 건축비의 1퍼센트를 사용 미술작품을 설치하거나, 0.7퍼센트를 문예진흥기금으로 납부하는 방안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 있다. 퍼블릭아트는, 개정안이 기존 제도의 문제점을 어떻게 시정할 수 있을 것인지 해당업무 실무자와 전문가, 그리고 공공미술 전문기획자들의 이야기로 정리했다. 또한 실질적인 개정안 추진 준비과정을 확인하고, 이에 우려되는 문제는 없는지 살폈다.

글,기획 | 월간 퍼블릭아트 이정현 기자

건축물미술작품제도, 이렇게 바뀌었다

지난 2011년 11월 26일 개정된 건축물미술작품제도(문화예술진흥법(제9조))는, 건축물을 연면적 1만 제곱미터 이상 신축 혹은 증축할 때, “1안) 건축비용의 1퍼센트 이하를 미술작품으로 설치”에 사용하거나, “2안) 설치비용의 70퍼센트를 기금으로 출연”을 제시했다. 개정안에 따라 건축주는 건축비의 1퍼센트를 들여 작품을 설치하는 대신 0.7퍼센트를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납부할 수 있게 됐다. 출연기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가 추진하는 공공미술 사업에 쓰이게 된다. 개정안이 제시한 ‘선택적 기금제’는 기존 미술장식제도가 제시한 100퍼센트에 비해 30퍼센트가량 ‘할인된’ 셈이니 건축주들의 부담은 줄었으며, 미술계에는 출연된 기금을 통해 지역 공공미술 사업 활성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됐다.

기존 건축물미술장식제도의 문제점

건축물미술장식제도는 이른바 “1퍼센트법”으로 불렸다. 1936년 프랑스에서 시행된 ‘퍼센트법(Percent of Art)’을 모델삼아 1972년부터 권장조항으로 출발한 이 제도는 1995년 대통령 공약사항에 의해 의무조항으로 강화되었다. 미술장식제도는, 관내에서 신?증축 중인 건축물에 ‘미술장식’이 설치되어야 하는지 판단한 후, 자치단체장이 설치 의무 사실을 건축주에게 알리면, 건축주는 건축허가를 취득한 후 착공신고 전에 미술장식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작품을 설치하는 방식이었다. 각 지자체 과세자료 통계에 따르면, 미술장식제도에 따라 2010년까지 국내에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은 총 12,195건, 누적 설치금액은 7,276억원이다. 평균적으로 추산했을 때, 한해 1000여점이 설치되고, 작품 당 7000여만원의 비용이 든 셈이다. 활황이었던 만큼 문제점 또한 불거졌다. 공공미술 기획자 및 교수 등 전문가들은 기존 제도가 ‘시행과정의 불공정성’, ‘장소성 부재와 유사한 조형언어 반복’, ‘사후관리 미흡’까지 세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박삼철 서울디자인재단 디자인부장은 기존 제도에 대해 “건축주들에 일임된 작가선정 및 작품설치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건축주들의 공공미술 개념 이해 부족”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건축주가 시공과 완공 계획을 맞추다보면, 미술장식제도의 법적 요건만 맞추기에 급급하게 돼 작품의 질은 뒷전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제도에 의해 설치된 작품은 ‘문패조각’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기존 제도에 따라 설치된 환경조형물들은 다양성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건축물미술장식 DB’에 따르면, 12,962점 가운데 조각이 9,592점으로 78퍼센트나 차지하고 있다. 김도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그간 환경조형 작품에 대해 “주변 장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장식품’ 수준의 조형물이 적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환경조형물 전시장이라고 볼 수 있는 테헤란로와 같은 경우, 작품들을 눈여겨보지 않는 이상 엇비슷하거나, 모호한 예술성을 가지고 있어 ‘시각공해물’로 치부되기도 한다”며 기존 제도에 의해 설치된 작품의 미적 수준에 대해 말했다.

작품의 사후관리 및 보존에도 문제는 뒤따랐다. 현재 기초자치단체가 작품 사후관리를 맡고 있는 실정인데, 담당 공무원이 작품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여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제도가 개정되기 이전, 일각에서는 공공미술 작품 관리를 위해 중앙관리센터나 비영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한경만 문화체육관광부 주무관은 “기초자치단체는 인력난에 시달리기 마련”이라며, “특히 전문화 된 심의위원회나 작품 사후관리를 맡을 인력은 더군다나 부족하여 실질적인 관리가 힘들었다”고 전했다. 예술위 측에서 제작한 ‘공공미술 작품 관리 매뉴얼’이 지자체에 전달되고 있으나, 매뉴얼만으로 작품 관리의 문제점이 해결되리라는 기대는 할 수 없다. 개정안과 더불어 작품 관리 또한 기존 기초자치단체에서 시군구 등 광역지자체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개정안에 관리제도에 대한 항목은 없다. 따라서 시군구 등 광역지자체에 위임된 관리정책은, 강제력을 담보하지 않고 있어 저마다 매뉴얼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선택적 기금제의 도입에 따른 새로운 비전

건축주들은 과거 미술장식제도를 민간규제로 인식했기에 규제완화나 제도 폐지의 목소리를 높였고, 반대로 미술계에서는 미술진흥과 도시환경미화 차원에서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관점이어서, 두 입장 사이에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를 조율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 ‘선택적 기금제’다.

기존 미술장식제도의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는 제도 시행지침 제정부터 있었으나,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진 때는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위, 상명대 연구팀 등 산학 협동 아래 이루어진 자문회의, 토론회, 심포지움에서 부터다. 이때 민간규제 완화를 위한 ‘선택적 기금제’에 대한 논의와 그 할인율에 대한 실질적인 방안이 만들어졌다. 작품 설치를 위한 기금제의 적용요율을 어느 정도까지 낮추는 것이 적당한가에 대한 의견이 속속 나왔다. 개정안 발효 이전에 이루어진 양현미 상명대 교수의 시뮬레이션 연구(「건축물미술장식제도에 있어서 선택적 기금제 도입 방안 연구」, 2010)에 따르면, 기금할인율은 현재 개정안과 같은 30퍼센트로(기존 1%에서 0.7%로), 30퍼센트보다 이하일 경우는 ‘기금제’ 도입의 실효성이 없다는 예상결과가 나왔으며, 연간 90억원 정도의 기금이 모일 것으로 내다봤다.

예술위 공공미술 TF팀은 출연기금의 지출계획을 세우고, 사업계획 수립, 기금배분, 사업평가까지 맡게 된다. 예술위는 향후 3년간 적립되는 기금으로 기존 제도가 가지고 있던 미비점인 심의전문성 부재, 작품 사후관리 미비, 개별건축물에 국한된 작품설치 등을 보완하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예술위가 내놓은 ‘공공미술 추진계획’에 의하면, 올해부터는 작품설치 및 심의, 기금신청을 담당하는 온라인시스템의 개발과 ‘공공미술 가이드맵’ 제작, 공공미술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 등 아카이브 구축 및 홍보에 힘쓸 예정이다. 세부사업의 총 비용은 10억원 가량으로 잡고 있다. 이후 지속 누적되는 문예기금에 따라 16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한 ‘지자체 공공미술 지원’과 국내외 예술가와 시민들이 협업한 선도적인 공공미술을 선보일 ‘우수공공미술 시범사업’, 그리고 ‘공공미술 기반조성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선택적 기금제로 인한 기금이 1년간 얼마나 모일지가 관건이다. 이윤희 예술위 공공미술 TF팀장은 “기금제가 도입되는 첫 해인 만큼 출연금액을 당장 산출하기 힘들다”고 설명하면서 “90억을 예상하고 있으며, 지출항목을 중심으로 우선 미술장식제도에서 노출된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술위는 문예기금이 누적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해는 3년 후인, 2014년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일몰제(법률이나 각종 규제의 효력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없어지도록 하는 제도)에 의해 시간적 제약을 받고 있는 이상, ‘선택적 기금제’ 출연기금의 누적액수가 당초 예상보다 적을 경우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선택적 기금제 또한 민간규제이므로, 세제감면 등의 혜택이 없는 한 건축주들이 얼마만큼 기금 출연을 할지가 관건인 것이다. 당초 예상보다 밑도는 기금이 출연될 경우에 대비한 사업계획도 마련돼야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선택적 기금제 도입에 따라 건축주 등 민간의 부담은 덜해진 편이지만, 일부에서는 기금납부의 효용적 측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섭 아트컨설팅서울 대표와 윤태건 동덕여대 교수는, 기금납부가 1퍼센트에서 0.7퍼센트로 낮춰진 할인율로 인해 리베이트 확대 재생산이 우려 된다고 지적하면서 직접 설치 할 때보다 30퍼센트나 금액이 할인되는 만큼 브로커가 할인율을 더 높여 사업에 개입할 여지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기존 제도에서 발견된 작품 선정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완전히 근절되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유병채 문화체육관광부 정책과장은 “기존 제도의 부작용은 즉시하고 있으며, 미술작품제도는 2014년까지 일몰제에 따라 존치 평가를 하게 되는데, 기존 정책의 부작용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경제적 차원에서 매년 4000억원 규모의 미술시장과 이에 1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공공미술계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며, “정부와 미술계가 다 같이 성숙하고 책임성 있는 태도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유 과장은 이에 덧붙여 “심의나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실행에 있어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으리라 판단되며, 사후관리나 리베이트 재생산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부작용 방지에 대해 힘쓸 것임을 밝혔다.

혁신도시, 미술작품제도의 실험장

지난 2011년 11월 30일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도시환경과 공공미술’ 심포지움의 주제는 혁신도시사업과 공공미술의 상관관계와 방향성에 있었다. 이 날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혁신도시사업이 건축물미술작품제도가 실험되는 가장 큰 무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혁신도시는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여, 지방의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사업이기에 도시계획에서부터 공공미술과 함께 어우러진다면, 사업대상 지역주민들과 미술계 모두 ‘윈-윈’ 효과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가 높다.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의 경우, 2014년까지 한국전력공사를 포함한 15개 이전할 예정이다.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전라도 나주시가 지닌 지리적 특성인 수평성은 시각적 접근성, 조망권이 양호하여 환경조형물이 들어서기 좋다”고 이야기하면서 “공공기관이 개별 건축물 내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것 대신 ‘선택적 기금제’를 선택했을 때, 일정규모의 예산을 도시 차원에서의 공공미술 기획에 사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만들 수 있는, 지속 유지 가능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 교수는 덧붙여 “이를 위해서는 관련 법?제도 및 정책 개선이 우선적이며, ‘제1종 지구단위계획’ 시행지침에 공공미술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라도삼 서울시정개발 연구위원은 “현재 혁신도시는 문화 환경 측면에서 보았을 때, 너무나 부족하다”면서 “예술적으로 취약한 중소도시가 세계적인 ‘창조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술문화프로젝트 등 계획적이고 전략적인 도시계획에 있었다”며 해외 공공미술 프로젝트 선진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선택적 기금제’ 말고도 개정된 건축물미술작품제도가 담고 있는 또 하나의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법률 안에 ‘공공미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고, 제도명 가운데 ‘장식’이 ‘작품’으로 표기 됐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용법 변경 차원을 넘어, 공공미술이 법 안에서 보장을 받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로써 한국 공공미술은 귀중한 전환점을 맞이했으며,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이제야말로 ‘공공성’의 참모습을 담보한 공공미술 작품들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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