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24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 b. 1953)의 생애 첫 개인전, ‘INSIDE OUT’이 11월 2일까지 갤러리현대 강남(대표:조정열)에서 열린다. 기아자동차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겸 부사장이기도 한 피터 슈라이어는 이번 전시를 통해 세계적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를 내려놓고 순수 아티스트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전시는 그가 전 생애를 걸쳐 작업한 드로잉, 설치, 회화 작품 60여점으로 구성되며, 자동차 디자인 너머 숨겨져 있던 피터 슈라이어의 예술적 감성을 선보인다.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자료제공 | 갤러리현대 강남
피터 슈라이어의 디자인 철학은 ‘감성디자인’으로 대변된다. 자동차 디자인은 산업디자인 중에서도 공학과 예술이 극 지점에서 공존하는 분야로 그의 감성은 테크놀로지와 균형을 이루며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내는데 일조했다. 피터 슈라이어 자신도 예술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부분을 함께 지니고자 한 것이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게 된 하나의 비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를 세계적 디자이너로 만든 예술적 재능, 슈라이어는 그것의 원천이 자신의 과거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는 화가였던 할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유년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그곳에서 모형을 구상하고 디자인, 제작하는 방법까지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자동차와 비행기, 작은 동물원 등 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주었던 장난감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며 예술적 재능의 뿌리를 잊지 않는다고. 그래서인지 할아버지에게 바치는 오마주와 어린 시절의 기억은 슈라이어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멋진 할아버지와 그의 근사한 수채화, 방대한 양의 스케치 작업.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유년시절의 기억이다.” _ 피터 슈라이어
할아버지 작업실의 경험을 시작으로 슈라이어는 상상력이 동원된 창의적인 방식으로 디자인을 바라보게 된다. 즉 자신의 경험과 감수성이 투영된 예술적 작업이 산업디자인으로 구현된 것이 바로 그의 자동차 디자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 전시를 자동차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를 떠올리며 찾는다면, 어쩌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지도 모른다. 예술적 감성이 그의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지만, 전시에서 보여지는 그의 작품 대부분에는 정작 자동차가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답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슈라이어의 예술작업은 그가 살아오며 얻은 경험, 배움, 감성, 그리고 중요했던 순간들이 투영된 마치 개인적인 일기와도 같은 것으로 밖이 아닌 내면의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슈라이어 스스로도 이번 전시에 대해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아닌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지닌 한 개인, 인간으로서의 피터 슈라이어로 비추어지길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 자신의 내면을 꺼내어 대중에게 ‘피터 슈라이어’가 어떠한 사람인지 보여주려 한다. 나는 정직하게, 숨기는 것 없이, 보여지고 싶다. 나머지는, 관객의 자유로운 해석에 맡기겠다.” _피터 슈라이어
슈라이어 작업의 예술적 모티브가 된 삶의 경험 중에는 한국에서의 시간도 포함된다. 담양 소쇄원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Rest’를 지난 2009년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에서 선보이기도 했던 것. ‘Rest’는 2m x 2m 남짓의 공간에 펼쳐진 설치작품으로 쇠 파이프를 통해 소쇄원의 대나무 숲을 떠올리는 연출을 보여준다. 그는 소쇄원을 방문했을 때, 12~18세기 사이에 유럽에서 유행했던 나인 멘스 모리스(Nine Men’s Morris)라는 보드게임 도판이 정자 마루에 새겨져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를 동양과 유럽문화 사이를 잇는 놀라운 연결 고리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피터 슈라이어를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디자이너, 그리고 기아자동차 K시리즈를 탄생시킨 디자이너로만 알고 있을지 모른다. 이번 전시는 INSIDE OUT’이라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 거장의 반열에 오른 세계적 디자이너의 예술적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지금껏 알지 못했던 피터 슈라이어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