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4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와 함께 새로운 문화의 탄생과 소멸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현대인들은 내면에 쌓여지는 어둡고 불안정한 감정들을 풀지 못한 채 방황한다. 블레즈 파스칼 (수학자, 신학자 Blaise Pascal, 1623 ~ 1662) 은 인간이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다. 즉 인간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불안정 하고 나약한 존재를 의미한다. 이러한 현대인들의 고통과 불안을 격정적인 색채와 왜곡되고 과장된 형태로 표현하여 19세기 말부터 유럽 전역을 지배했던 미술 사조가 있었다. 바로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미술이라 일컫는 표현주의 (Expressionism) 이다.
글│백송의 영국통신원
기사제공│퍼블릭아트
세계대전 후, 충격과 공포의 소용돌이에서 표현주의 작가들은 암울한 실제 세계가 아닌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의 고통과 고뇌, 혼란, 절규, 외로움 등의 감정에 집중했다. 이러한 표현주의에 중요한 영감을 제공했던 화가는 바로 노르웨이 출신의 상징주의 작가로 잘 알려진 에드와르 뭉크 (Edvard Munch, 1863 ~ 1944) 였다. 에드와르 뭉크는 유년 시절, 어머니와 누이를 폐결핵으로 잃고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오면서 죽음과 삶에 대한 회의와 우울함, 사랑하는 이를 잃는 슬픔과 절망을 겪었다. 하지만 그의 암울했던 과거는 인간이 본원적으로 늘 품고 있는 공포, 고독, 고뇌, 질투, 욕망, 광기와 같은 극단적인 감정들은 표현하는데 능숙하게 만들었으며 독특한 미술세계를 구축하여 페인팅, 드로잉, 에칭, 석판화, 목판화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창성으로 현대인의 고뇌를 표현했다.
이번 테이트 모던 (Tate Modern) 에서 열린 ‘에드와르 뭉크: 근대적 시선’ 전에서는 더 이상 그의 시그니쳐 작품인 ‘절규 The Scream, 1893’ 는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그 동안 보기 힘들었던 20세기에 제작한 그의 사진과 영화작품들이 새롭게 관객들을 맞이한다. 이전의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작품 이미지와 사진 및 영화의 조합은 낯설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근대시기에 제작되었으며 그는 당시 시대적 상황의 기술력과 문화적 발달에 많은 영향을 받아 작품에 활용했다. 특히, 사진, 영화, 연극 문예로부터의 시각적 효과와 독특한 움직임, 시선적 처리를 기록하며 그것들의 매력을 미술작품 속에서 어떻게 끌어낼지 연구했다.
1900년부터 카메라를 사용한 에드와르 뭉크는 사진의 다양한 효과에 관심을 가졌고 그 중에서 카메라 렌즈를 사용할 때 나타나는 왜곡 현상을 즐겨 썼다. 그의 작품 ‘빨간 덩굴풀 Red Virginia Creeper, 1900’을 보면 전면의 창백한 얼굴과 초점 없는 한 인물이 마치 사진을 찍는 것처럼 관객으로 시선을 향해 왜곡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영화광이었던 그는 1927년 소형 아마추어 필름 카메라와 프로젝트를 구매해 드레스덴 (Dreseden) 과 오슬로 (Oslo) 에서 4개의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그는 그를 둘러싼 카메라 앞에서 펼쳐지는 일상적인 주제인 길거리 모습, 지나가는 자동차, 풍경, 친구 등을 찍으며 기존의 필름카메라에 지침서인 부동적 자세와 안정적인 광학레벨에 대해 조롱했고 주관적 주제의식과 불시의 동작을 보여주며 그만의 방식대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 밖에도 그의 작품 ‘예술가와 모델 The Artist and model, 1921’ 에서는 연극무대 조명의 시각적 효과를 차용해 실제 연극무대와 같이 작품이 눈에 띄는 효과를 묘사했다.
이러한 사진, 영화, 연극의 기술 및 형식적 컨텍스트의 차용과 함께 에드와르 뭉크는 내용적인 면에서 주관적 메모리와 감정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스튜디오 외부의 일상생활과 매체와 언론에서 보도되는 사건 사고들의 내용들을 다루기 시작한다. 파리와 베를린에서 활동 후, 1909년 노르웨이로 돌아가 은둔 생활을 했지만 신문과 잡지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동시대 사건들과 가까이 하고자 노력했고 그러한 이슈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감각적 묘사로 작품을 그려나갔다. 그의 작품 ‘오슬로에서의 혼란 Panic in Osolo, 1917’ 은 일차 세계대전에서 중립국이던 노르웨이가 독일의 경제제한 조치로 인해 노르웨이 국가의 공포와 불안을 에드와르 뭉크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 놨다.
이 밖에도 전시를 통해 1880년부터 1890년대까지 자신의 내면의 감정을 다뤘던 총 60여 점의 페인팅, 드로잉, 판화, 조각들을 재조명한다. ‘절규 The Scream, 1893’과 같이 오랜 기간 동안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약간의 이미지 변형을 통해 반복적으로 그렸던 작품들도 엿 볼 수 있는데 특히, 누이의 죽음에 대한 아픈 기억을 담고 있는 ‘아픈 아이 The Sick Child, 1907’ 와 강렬한 색채표현과 원근법을 강조한 ‘다리 위에 있는 소녀들 The Girls on the Bridge, 1899’의 다른 버전들 볼 수 있다. 에드와르 뭉크는 자신이 반복적으로 그리는 것에 대해 매 순간 그릴 때 마다 새로운 과정과 감정을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매회 작품마다 같은 작품은 없다고 이야기 한다.
자신을 둘러싼 암울한 과거와 어두운 감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근대시기에 등장한 외부의 문화적 변화에 수용, 자신만의 묘사기술을 연구하며 작업세계를 구축한 에드와르 뭉크, 이제는 지겨운 그의 유년 시절의 아픔, 정신분석학적인 시선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근대적 시선으로 새롭게 모더니즘의 작가로 맞이하고자 한다. 전시는 10월 14일까지.
글쓴이 백송의는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과를 졸업한 후,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Diploma in Contemporary History of Art 과정을 마치고 현재 런던시티대학에서 Cultural Policy and Management 석사과정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