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9
문화역서울284에서 독특한 예술체험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예술 장르간의 융합과 시간성에 주목하는 퍼포먼스 프로젝트, ‘플레이타임’이다. 지난 11월 17일부터 시작된 이번 기획전에서는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상, 문학,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 55인(팀)이 ‘예술의 시간성은 우리 일상에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대한 고민을 150여회의 독특한 퍼포먼스로 선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마련한 ‘플레이타임’은 12월 28일까지 문화역서울284 전관에서 매일 동시 다발적으로 펼쳐진다.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자료제공 | 문화역284
다양한 퍼포먼스로 구성되는 ‘플레이타임’은 꽤나 독특한 전시다. 문화역284 전 공간에 걸쳐 동시 다발적으로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형태로 기존의 공연예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조금 어색할 지도 모르지만 채널마다 다른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TV와 비슷한 구성이라 이해하면 될 듯 하다.
‘플레이타임’의 퍼포먼스 전시를 구성하는 프로그램은 문화역서울 284 예술감독인 김성원, 독립큐레이터인 김해주와 김현진, 안은미 컴퍼니 예술감독 안은미, 아트 스페이스 풀 대표 김희진 등 다섯 명의 기획자가 준비한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눠진다. 기획자들은 ‘시간’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가지고, 그 안에서 각각의 섹션을 통해 시간을 활용하는 실험적 형태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먼저 김성원은 ‘리허설’이라는 제목으로 하나의 섹션을 구성한다. ‘리허설’은 정식 공연 전 이뤄지는 반복되는 실험의 과정을 뜻하는 것으로 그 속에는 부분, 미완성, 불안정, 실수라는 완전하지 못한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요소들은 반복되지만 매번 다르게 작동된다. 그리고 시 낭송, 타로카드 읽기 등 14명의 작가들이 펼쳐내는 ‘리허설’의 퍼포먼스에서 미완성의 요소들은 관객의 참여를 통해 채워진다. 관객들의 체험을 허용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즐기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김해주가 기획한 ‘모래극장’은 시간성이 전제되는 ‘이야기하기’, 즉 여러 장르의 퍼포먼스에서 교집합으로 도출해 낼 수 있는 성격인 ‘서사’와 ‘시간, 그리고 기억의 관계에 주목한다. ‘모래극장’의 레퍼토리는 관객 각자의 시간 조합에 따라 무한한 경우에 수로 확장된다. 시간에 따라 끝없이 변화하는 서사의 변주를 경험하는 장소로 모래극장에는 무대도 좌석도 벽도 없다. 단지 기억과 역사를 품은, 혹은 도구와 은유로 활용된 다양한 서사들이 설치, 영상, 또는 퍼포머의 몸을 타고 발현되었다 사라질 뿐이다.
김현진의 ‘에피스테메의 대기실’은 다양한 개념에 대한 인식적 탐구를 보이는 8편의 작품이 소개되는 섹션으로 도시 풍경 속에 공존하는 서로 다른 속도감을 표현한 탭댄스, 서울역 주변에서 관찰되는 부조리한 이미지들을 라이브로 편집하는 퍼포먼스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여성 국극(國劇)을 원로 배우들(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조영숙,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2호 이등우)의 참여로 근현대의 흥미로운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이곳에서 주어진다.
안은미는 ‘스테이션’을 주제로 ‘학교’라는 형식을 차용한 ‘플레이타임 아트스쿨’을 선보인다. ‘아리랑 스테이션’, 플레이 스테이션’, ‘마싸지 스테이션’ 등 ‘스테이션’이라는 공통의 제목이 붙여진 10명의 작가들로 구성되는 이 섹션에서는 관객들과 주제를 공유하고, 토론하며, 학습하는 체험을 제공한다. 그리고 ‘학교’ 이처럼 내면화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의 하나로써 채택된 형식이다.
마지막으로 김희진의 ‘하기연습’은 ‘~하기’, 즉 인간의 모든 행위 자체에 관심을 가진다. ‘무엇을 어떻게 하자’라는 말보다 ‘할 수 있다’라는 자기 긍정, 작은 실행의 가치를 탐구하는 섹션으로 총 14인(팀)의 미술작가들이 각자 ‘하기’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형식은 서로 다를지 몰라도 이들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의미는 같다. ‘하기’의 의지와 가치를 활성화시키고 혹은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
이상 5개 섹션과 더불어 이번 기획전에서는 ‘플레이타임 리더(Playtime Reader)’가 발행된다. ‘플레이타임 리더’는 퍼포먼스와 수행성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다양한 입장과 제안으로 구성된 텍스트 모음집으로 최근 크게 주목 받고 있는 퍼포먼스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플레이타임’은 감상하는 예술이 아닌 경험하는 예술의 시간이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흥미로우면 흥미로운 대로 그저 문화역284라는 공간에서 함께 즐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예술을 꼭 이해하고 감상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어디 한번 퍼포먼스 예술과 흥겹게 놀아보자. 플레이타임!
문화역284 홈페이지 http://www.seoul284.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