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26
문화예술재단과 기관, 단체들은 지역 문화예술의 정체성을 알리고 지역민들과 함께 향유하고 소통하는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지자체에 의해 건립된 몇몇 기관과 단체들에 의해 움직인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소규모 단체나 대안 공간의 활동은 그저 알 만한 사람들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들의 다양한 활동이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지역문화예술의 상생과 발전을 함께함은 물론 지역민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대전 지역에서는 대전시립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지역 문화예술기관과 단체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중 시각 예술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대전 지역의 문화와 로컬리티를 구축하고 있는 대안적 문화 주체 공간을 소개하고, 그들의 조용하면서도 과감한 문화적 실험 정신과 고암 이응노 화백의 실천주의적 예술행위와의 접점을 찾아 조명하는 ‘조용한 행동주의' 展이 이응노미술관에서 내년 2월 9일까지 개최된다.
글│구선아 객원기자( dewriting@naver.com)
자료제공│이응노미술관
‘카페 비돌’, ‘산호여인숙’, ‘월간 토마토’, ‘대전아트시네마’는 자신들만의 신념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실험적 문화 행위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실험적 문화 행위를 통해 대전의 새로운 문화적 지형도를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문화 주체들이다. ‘조용한 행동주의’ 展에 참여한 작가들은 이러한 문화 활동을 수행하는 주체 그 자체이며 그들의 문화적 태도와 행위가 논의의 중심에 있다.
그렇다면 ‘조용한 행동주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재 베이징 아트미아재단 예술 감독이자 이번 전시의 공동기획자인 고원석은 조용한 행동주의의 주체들은 문학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 장르의 고전적 범주구분을 초월하여 다양한 장르를 결합한 총체적 문화행위를 지향한다고 이야기하며 조용한 행동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한국의 미술문화가 완고한 모더니즘의 역사를 넘어 혼성모방과 키치적 감성을 표방하는 포스트모던 담론의 자유분방함으로 넘쳐날 때, 대전은 그 역사의 한 자락에서 분명한 역할을 수행하는 장소였다. 적지 않은 작가들이 삶의 무게를 이겨내면서 새로운 실험과 혼종 교배를 시도하고 지역을 초월한 담론을 이어나갔다. 당시 새로운 예술가들은 장르의 구분에 연연치 않고 심지어 예술과 비예술 간의 공고한 경계마저 파괴하며 새로운 실험적 예술행위들을 시도했다. 이러한 실험 정신을 계승하는 대전의 새로운 문화 주체들은 숙박업이나 극장과 같이 도시의 보편적 기능의 구현을 한 축으로 놓고 그러한 행위에 지속적인 문화적 실험의 의미를 부여해왔다는 측면에서 조용하면서도 과감한 행동주의로 정의될 수 있다.”
또한 ‘조용한 행동주의’는 고암 이응노의 문화적 행위를 통한 대중과의 구체적인 소통을 지향하고 사회적 발언의 제기에 대한 견해를 담고 있다.
“그림이란 벽에 거는 장식품으로만 그쳐서는 안 돼요. 사회의 모순, 순수한 인간에 대한 애정…, 이런 피 끓는 발언이 없어서는 안 되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그림에 생명이 깃들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용한 행동주의’ 展은 지난 3일 카페 비돌의 오프닝 퍼포먼스 ‘도망자’로 시작됐다. ‘도망자’는 파인피플스펜딩나이스홀리데이스와 안권영이 기획했으며, 한 현대인의 심리적 방황을 사이버 펑크적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사이키델릭한 음악과 영상 및 장치를 이용해 현대사회 속 개인의 고독을 보여주는 일종의 블랙 코미디 로큰롤 퍼포먼스였다.
카페 비돌은 ‘비가 그친 후, 돌을 굴려라’라는 뜻으로, 20세기 초 유럽에서 일어났던 반 예술운동 다다(DADA)의 카페 볼테르(Café Voltaire)처럼 카페 겸 주점으로 운영되는 동시에 전시, 퍼포먼스, 토론 등 다양한 예술행위가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지역 예술인들의 공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비돌 만의 이야기’를 주제로 카페 비돌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해 비돌 건축물에 사용된 캔, 깡통 등을 활용한 독특한 구조물을 설치했다. 천장에는 이응노 화백의 ‘군상’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종이 모빌이 설치되었고 나무 구조물과 냉장고, TV, 의자 등을 통해 카페 비돌 공간을 연출하였다. 또한, 대흥동 주변의 원도심과 카페 비돌의 소리를 채집한 사운드와 퍼포먼스 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를 통해 미술관 관람객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산호여인숙’은 단순한 숙박 공간을 넘어 문화와 예술이 문안(問安)하는 게스트하우스를 표방하는 공간으로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의 본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전시와 공연, 퍼포먼스, 작가 레지던시 공간을 운영하는 등 매우 독특하고 활기찬 복합 문화 공간이다. ‘Shall We Sleep?’이라는 제목으로 구성되는 산호여인숙의 전시 공간에는 2~3개의 2층 침대와 함께 실제 산호여인숙의 실제 수면 공간이 미술관 내에 구현되며, 여기에서 ‘방’은 전시의 대상으로서 시각적 대상을 넘어 사람이 실제 머물 수 있는 실질적 공간이 된다. 미술관의 공간과 여인숙의 ‘방’이 만나 사람과 사람, 사람과 미술관 공간, 사람과 예술이 함께 ‘잠(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을 자는 행위를 전시의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제 수면 공간을 활용하여 퍼포먼스로도 구현되었는데 이응노미술관 학예사가 진행하는 ‘고암 이응노의 예술세계’, 문학평론가 복도훈과 ‘좀비는 왜 걷기는 멈추지 않는가’란 주제로 열리며, 뮤지션 봄눈별, 인애와 함께 열리기도 한다.
월간 토마토는 기록을 테마로 ‘공간, 사람 그리고 콘텐츠 생산, 행위로서의 예술의 일상성’을 실현하는 대전의 문화 잡지 공간이다. ‘Look different, 우리는 다르게 보길 원한다’를 주제로 구성된 월간 토마토의 공간은 세상을 바라보는 토마토의 관점이 어떠한 발상에서 오는지를 보여준다. 종이와 활자로 대표되는 서재로 꾸며진 월간 토마토의 공간은 소비적 감성의 흐름에 치중하기보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을 표현하며, 이로써 다수와는 다른 관점, 즉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을 상징한다. 책장과 책상, 의자, 카펫 그리고 책을 이용하여 북 카페처럼 전시 공간을 연출했으며 전시 기간 내 1회 진행되는 북 콘서트 ‘한 입 하실래요?’에서는 월간 토마토가 추구하는 세상과 월간 토마토가 만드는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마지막 대전아트시네마는 지역 유일의 예술 영화 상영관으로 영상교육, 인문학 강좌 등이 함께 운영되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영화의 옛 명칭이었던 ‘활동사진’은 1903년 영화가 한국에 도입되면서 사용되던 단어로, 영화의 사진적인 특성, 즉 영화의 ‘물질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영화가 연속성을 가장하는 ‘거짓 운동’이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드러내지만, 현대로 건너오면서 영화는 점점 현실과 닮아갔고, 대중들은 이미지와 사운드 속에 기꺼이 자신을 내맡기며 본래의 영화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Back to the Movie, A real Movie’를 주제로 구현되는 대전아트시네마의 공간은 잊혀진 영화의 ‘물질성’을 드러냄으로써 그동안 관객이 잊고 지냈던 영화의 본질을 사고할 수 있도록 돕고, 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심상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자 한다. 나무의자와 게시판, 아트시네마 간판과 상영표, 전광판을 이용해 전시장 내에 극장을 연출하였고 제작한 영상과 영화도 상영하고 있다. 또한 전시기간 내 ‘영화 문화의 공공성 및 협동조합의 역사’라는 세미나도 개최한다. ‘지역에서의 공동체 영화관은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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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협동조합, 생산-유통-소비의 대안적인 접근’과 ‘영화산업과 영화문화, 그리고 영화문화의 공공성’, ‘영화협동조합의 사례와 공동체영화관의 가능성’에 대한 발제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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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통해 이응노미술관은 지역을 대표하는 사회적 문화기관으로서 다양한 형태의 전시를 통해 ‘문턱이 높다’는 기존의 미술관이 가진 한계점을 극복하고, 지역의 문화 주체들과 다양한 소통 방식을 모색하면서 지역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다. 또한 고암 이응노의 작품처럼 현실사회의 모순을 분명히 지적하면서, 물질과 장르에 구속되지 않는 유연함과 통찰력을 가지고, 사람에 대한 통찰과 애정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소통을 지향한다. 이처럼 이응노미술관과 지역의 문화 행동 단체들과의 소통으로 대전이라는 지역 문화예술의 한 축이 오늘도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응노미술관:http://ungnolee.daejeon.go.kr